땅 뺏기고 누명까지…'구로 농지강탈' 반세기만에 피해회복

입력 2017-11-29 10:59  

땅 뺏기고 누명까지…'구로 농지강탈' 반세기만에 피해회복

구로공단 조성 위해 농지 강제수용…반환소송 내자 '소송사기'로 기소

피해자 유족이 재심청구…대법 "국가 불법행위 인정, 유족에 배상하라"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1960년대 초 구로공단 조성 과정에서 농지를 빼앗기고 범법자라는 누명까지 써야 했던 농민의 유족들이 재심과정을 거쳐 국가배상을 받게 됐다.

반세기라는 세월을 견딘 피해자 측에 국가의 배상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29일 나오면서다.

'구로공단 농지 강탈사건'은 1961년 9월 정부가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구로공단)를 조성한다는 명목으로 서울 구로동 일대에 약 30만평의 땅을 강제수용하면서 시작됐다.

정부는 이 땅에서 농사를 짓던 주민을 내쫓았다. 해당 부지가 서류상 군용지였다는 점을 사유로 내세웠다.

농민들은 1950년 4월 농지개혁법에 따라 서울시로부터 적법하게 분배받은 땅인데 왜 나가라고 하느냐고 호소했지만, 정부는 귀를 닫고 토지수용을 강행했다.

농민들은 마지막 수단으로 법원을 찾았다. 750여평의 농지를 뺏긴 이씨는 다른 피해자 46명과 함께 1967년 국가를 상대로 땅을 되찾기 위한 소송을 냈다.

1심에서 농민들이 승소하자 구로공단 조성에 차질을 우려한 당시 박정희 정권은 권력기관을 동원했다. 검찰이 1968년부터 농민들과 관련 공무원에게 소송 사기 혐의를 적용해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농지분배 서류가 조작됐다며 농민들뿐만 아니라 농림부 등 각급 기관의 농지 담당 공무원들까지 사법처리됐다.

정부의 강경한 태도에 놀란 듯 2심은 1969년 '농지분배 절차에 하자가 있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이씨 등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2심 판결의 하자는 대법원에서 드러났다. 1970년 농지분배는 적법했다는 판단과 함께 2심 판결을 다시 하라는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단이 내려졌다.

하지만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좀처럼 결론을 내지 않았고, 이씨를 제외한 다른 농민들 대다수가 소송을 취하했다.

결국, 이씨는 유사한 소송을 진행 중이던 다른 일부 농민들과 함께 소송 사기 혐의로 형사재판에 넘겨졌다.

1979년 대법원이 이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했다. 설상가상으로 땅 소송을 심리하던 파기환송심은 이 같은 형사판결을 이유로 이씨의 패소를 선고했다. 이씨마저 상고를 포기하면서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반전을 맞은 건 2008년 7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이 나오면서다.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을 "국가의 공권력 남용으로 벌어진 일"이라며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1983년 사망한 이씨의 유족들이 우선 형사재판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고, 이씨는 유죄를 확정받은 후 32년이 지난 2011년에야 범죄혐의를 벗게 됐다.

무죄판결을 받아낸 유족들은 농지를 되찾기 위해 1979년 파기환송심 판결에 대해서도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재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2013년 "국가의 불법행위가 인정되므로 농지 시가 상당액인 32억 3천560만원을 유족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농지 소유권 이전 청구는 '농지법에 따른 소유권 취득이 불가능하게 됐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1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이날 이씨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심사건의 상고심에서 '유족에게 32억3천560만원을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이씨 외에 구로 농지강탈 사건 피해자와 유족이 제기한 3건의 재심 사건도 같은 취지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농민들이 농지를 강제 수용당한 지 55년, 땅을 되찾으려 처음 법원 문에 들어선 지 50년 만이다.






hy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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