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기름유출 10년…123만명 손으로 다시 찾은 바다

입력 2017-12-03 08:00  

태안 기름유출 10년…123만명 손으로 다시 찾은 바다

세계가 인정한 국립공원으로 거듭나다…"반갑다 상괭아!"

전국서 모인 자원봉사자들이 일군 기적…"정책적인 지원 당부"

(태안=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2007년 12월 7일 오전 7시 6분. 충남 태안군 만리포해수욕장 앞바다에서 삼성중공업 해상 크레인과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유조선 오일탱크에 구멍이 나면서 1만2천547㎘의 기름이 바다로 쏟아졌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순식간에 시커먼 기름띠로 뒤덮였다. 사상 최악의 해양오염 사고로 기록된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검은 타르 덩어리로 오염된 바다는 어느새 비취색 물빛을 되찾았고, 코를 찌르던 악취도 비릿한 바다 내음으로 바뀌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변화는 세월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자원봉사자들이 일으킨 기적 덕분이었다.






◇ 태안, 세계가 인정한 국립공원으로 거듭나다

지난해 1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태안해안국립공원 보호지역 등급을 '카테고리Ⅴ'(경관보호지역)에서 '카테고리Ⅱ'(국립공원)로 상향 인증했다.

IUCN은 세계의 보호지역을 Ⅰ에서 Ⅵ 까지 6개 유형으로 분류하는데, 경관보호지역에서 국립공원 등급으로 변경된 것은 생태적 가치가 우수하고 관리·보전 상태도 뛰어나다는 것을 뜻한다.

해양 생태계의 건강성을 나타내는 각종 지표도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유류오염센터가 진행한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유출 사고에 따른 생태계 영향 장기 모니터링' 결과를 보면 2008년 태안지역 전체 해안의 69.2%에 달했던 잔존 유징이 2014년 기준 0%로 바뀌었다.

잔존 유징은 유류 사고로 인한 기름이 해변이나 표면 아래로 스며든 정도를 뜻한다.

지난해 말 기준 동물성 플랑크톤 출현 종수는 사고 발생 직후보다 37% 포인트 증가했고, 종 다양도 지수도 계절병 변동 폭이 34% 포인트 감소했다.

계절별 변동 폭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생태계 오염으로 인해 갑자기 출현했던 종들이 점차 사라지고, 기존 서식해오던 종이 안정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다의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어민들이다.

지역 대표 수산물인 바지락에서부터 꽃게, 대하, 우럭 등의 어획량이 예년 수준을 회복했다.


지난 4월 소원면 파도리 일대 양식장에서는 400여 명의 어촌계원이 올해 첫 바지락 채취에 나서 하루 동안 10t가량의 바지락을 수확했다.

올해는 가뭄의 영향으로 수확량이 다소 줄었음에도 매년 바지락 생산량이 늘면서 평년 수준으로 돌아왔다.

지난 9∼10월 태안 앞바다에서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자연산 대하잡이가 한창이었다.

안면읍 백사장항에서 하루 평균 40∼50척의 어선이 대하잡이에 나서 하루 1∼3t을 잡았다.

국립공원관리공단 관계자는 "해수 내 유분 분석 결과 이미 2009년부터 국내 해양 환경 기준 10분의 1 정도 수준으로 회복돼 이제 해수 내 유분은 없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123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이뤄낸 기적

"1989년 엑손발데즈호의 알래스카 노스 슬로프 기름 유출 사건 때 유출됐던 원유가 10년 후까지도 알래스카만 해안선에 남아있었습니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발생 후 1년이 지나 열린 국제포럼에서 세계 각국의 환경 전문가들은 사고로 인해 태안지역에 장기적인 생태·환경 파괴가 일어날 것을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수십년이 걸려도 사고 이전으로 되돌리기 힘들 것이라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 반 만에 태안지역 생태계에 복원을 의미하는 청신호가 켜졌다.

2009년 말 기준 바지락 폐사율이 4.7%로 전년 24.6%에 비해 급감했고, 태안 연안의 해수 유분 농도가 전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지난해 6월에는 멸종 위기종인 상괭이 100여마리가 태안 앞바다에서 무리 지어 헤엄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지난해 태안을 찾은 관광객이 1천만명을 넘어 전년보다 10.5%나 늘었고, 이국적인 풍경과 넓은 해변을 자랑하는 만리포해수욕장은 '만리포니아'라 불리며 서퍼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사고 이후 전국에서 달려온 123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아니었다면 이런 변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자녀와 함께 기름띠 제거 봉사에 나섰다가 현재는 '서울 꽃동네 사랑의 집'에서 일하는 50대 여성부터 파키스탄에서 귀화해 자원봉사에 참여했던 이주노동자, 대학생 봉사단원에서 시작해 지역 자원봉사센터에서 근무하는 청년까지.

양동이로 기름을 퍼 나르고 바위 사이에 낀 기름을 닦아내던 손들이 모여 거대한 인간 띠를 이었고, 그렇게 기적의 바다를 일궈냈다.

그렇게 태안은 자원봉사자들의 노력과 정신을 상징하는 희망의 성지로 거듭났고, 대한민국 국민의 저력을 보여주는 역사적 상징이 됐다.




◇ 주민 트라우마는 여전…남은 과제는

지난 7월 충남 태안군 근흥면의 한 해수욕장 해변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색 덩어리들이 발견됐다.

누르면 흑갈색 기름을 쏟아내는 '타르볼'이라 불리는 이 기름 덩어리는 주민들에게 2007년 12월 기름 유출 사고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해경 조사 결과 해당 기름 덩어리의 주성분은 '벙커C유'로, 10여년 전 기름 유출 사고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에는 기름 유출 사고 이후 태안주민의 전립선암과 백혈병 발병률이 급증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태안군이 '유류 유출에 따른 태안주민 건강영향'을 조사한 결과 암 발생률은 태안군이 전국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비슷한 성격의 다른 군과 비교할 때 전립선암(남성)과 백혈병(여성) 발생률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전립선암 발병률은 2004∼2008년 10만명 당 12.1명에서 사고 이후인 2009∼2013년에는 30.7명으로 154%나 급증했고, 백혈병도 2004∼2008년 10만명 당 5.6명에서 2009∼2013년에는 8.6명으로 54%나 증가했다.

군 관계자는 "노출에서 암 발생까지 최소 10∼20년이 걸리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단기간 조사로 기름 유출 사고가 태안주민의 특정 암 발병률을 높인 직접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도 "태안의 남성 전립선암과 여성 백혈병에 대해서는 앞으로 원인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바다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지만, 주민들의 상처는 아직도 여전하다.


이들을 보듬고 치유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확한 역학조사가 이뤄져야 하고, 아직 끝나지 않은 보상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충남도 관계자는 "바다는 사고 이전의 모습으로 회복됐지만 지역경제 침체를 극복하는 것이 과제로 남았다"며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법적·제도적 장치 등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jyou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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