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오픈에서 11년 만에 한국 선수로 WTA 대회 결승 진출
결승 상대 장솨이 "충분히 할 수 있으니 계속 도전해라"고 격려
(서울=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 한국 여자테니스는 조윤정(38) 이후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에서 활약하는 선수가 사라졌다.
조윤정은 2003년 세계 랭킹 45위까지 올랐던 선수로 WTA 투어 단식에서 세 차례 준우승을 차지한 경력이 있다.
2008년 은퇴한 조윤정은 2006년 상반기에 허리 부상을 입은 뒤로 정상적인 투어 활동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10년이 넘도록 그의 뒤를 이을 한국 선수가 나오지 않고 있는 셈이다.
지도자로 변신한 조윤정 코치가 가르치는 장수정(22·사랑모아병원)이 '포스트 조윤정'의 선두 주자다.
지난달 말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에서 끝난 WTA 125K 시리즈 하와이오픈 단식에서 준우승한 장수정은 2006년 1월 WTA 투어 캔버라 인터내셔널 조윤정 코치 이후 11년 10개월 만에 WTA 주관 대회 결승에 오른 한국 선수가 됐다.
이번에 장수정이 결승에 진출한 WTA 125K 시리즈는 투어보다 한 등급 낮은 대회이기는 하지만 조윤정 이후 10여 년 만에 세계 무대에서 가능성을 엿본 한국 선수가 나왔다는 점에서 내년 이후를 기약하기에 충분한 결과였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인 2013년 WTA 투어 코리아오픈에서 8강까지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던 장수정은 하와이오픈 준우승으로 세계 랭킹 141위까지 올랐다. 그의 역대 최고 랭킹은 올해 6월 120위다.
지난달 28일 귀국한 장수정은 "올해는 시즌을 치를수록 좋아지는 것이 느껴져서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며 "국제테니스연맹(ITF) 서키트 대회보다 등급이 높은 WTA 투어에 더 많이 뛰어 랭킹 포인트를 따기 쉽지 않았지만 그런 도전을 통해 얻은 것이 많은 한 해였다"고 돌아봤다.
총상금 10만 달러 이상 대회에서 처음 결승에 진출한 장수정은 "이번 하와이 대회에 가기 전에 최고 성적인 8강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이전 저의 한계를 넘어서겠다는 마음가짐이 준우승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안양서여중 1학년 때인 2008년에 이미 고등학생 언니들을 물리치며 '테니스 신동'으로 일찍 두각을 나타낸 장수정은 하와이오픈을 끝으로 2017시즌을 마치고 동계훈련에 들어갈 예정이다.
장수정은 "보완할 점이 많지만 우선 서브 확률을 높여야 한다"며 "중요한 포인트, 중요한 게임 때 제 서브를 믿고 활용을 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아직 부족하다"고 자평했다.
서브 스피드는 시속 170∼180㎞가 나와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제외하면 크게 밀리지 않는 수준이지만 코스 공략이나 첫 서브가 들어갈 확률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키 171㎝인 그는 "예전에는 파워나 근력에서 부족한 점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몸이 많이 좋아져서 자신감이 붙었다"며 "이달 중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며 2018시즌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해 프랑스오픈과 US오픈에서 예선 결승까지 진출, 1승만 더했더라면 메이저 대회 본선 무대를 밟을 수 있었지만 끝내 고비를 넘지 못한 장수정은 "US오픈 예선 결승이 가장 아쉬웠다"고 털어놨다.
당시 예선 결승에서 세계 랭킹 137위였던 장수정은 206위였던 안나 자야(독일)를 맞아 1-2(4-6 7-5 4-6)로 졌다.
장수정은 "너무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오히려 제 플레이를 하지 못했다"며 "3세트도 게임스코어 1-5로 끌려가다가 4-5까지 따라갔는데 결국 져서 너무 아쉬웠다"고 밝혔다.
그래서 장수정이 2018년 목표로 내건 것은 "메이저 대회 본선 진출과 세계 랭킹 100위 내 진입"이다.
세계 랭킹 100위 내에 진입하면 메이저 대회 단식 본선에 자력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에 1년간 네 차례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1회전 탈락을 하더라도 약 2억원 정도의 상금을 확보할 수 있다.
사실 그러기 위해서는 외국 대회를 함께 다닐 코치와 트레이너 등 팀 구성이 필요하다.
현재 조윤정 코치가 그를 돌봐주고 있지만 육아 등 개인 사정으로 장수정 지도에 전념하기 어려워 새 코치를 물색해야 한다. 트레이너는 테니스선수 출신 친오빠(장광익 씨)가 맡고 있다.
대구테니스협회장인 백승희 사랑모아병원장이 장수정을 후원하고 있는 가운데 안정적인 투어 활동을 하려면 추가 후원사 유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하와이오픈 준우승으로 한참 상승세를 타는 시점에 시즌이 끝나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는 장수정은 "그래도 결승 상대였던 장솨이(중국)가 경기가 끝난 뒤에 '지난번 맞대결 때와 비교해 많이 좋아졌다.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니까 계속 도전하라'고 말해줬다"고 소개하며 "이런 자신감을 유지하면서 2018시즌을 시작한다면 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했다.
9월부터 테니스선수 출신 박성희 교수에게 심리 상담을 받는 것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8년 1월 첫 주 WTA 투어 대회 예선으로 시즌을 시작할 예정인 장수정은 "페더러나 나달, 고핀 등 멋있는 플레이와 좋은 매너, 인성을 두루 갖춘 선수들을 닮고 싶다"며 "특히 고핀은 크지 않은 키(180㎝)에도 스트로크가 좋고, 힘들이지 않고 치는 모습에 눈여겨보고 있다"고 소개했다.
2018시즌에 100위권 진입과 메이저 대회 본선 진출을 목표로 하는 그는 "투어 대회 우승도 하고 싶고, 최종적으로는 조윤정 선생님(세계 랭킹 45위)도 뛰어넘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인터뷰를 마친 뒤 장수정은 "'백승희 원장님과 김일순 감독님, 조윤정 코치님, 우리 가족, 매니지먼트를 맡은 브라보 앤 뉴, 응원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는 말을 꼭 넣어달라"고 따로 부탁하는 메시지를 전해왔다.
그 메시지를 보면서 세계 100위권 진입과 투어 우승이라는 목표를 이룬다면 이미 갖춘 인성과 미모에 기량까지 겸비한 선수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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