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결혼이민자 중국 제치고 1위, 이주노동자·유학생은 2위
식민지·분단·전쟁 등 공통점 많아…국내 '베트남댁' 6만여 명
[※ 편집자 주 = 오는 22일은 한국과 베트남 수교 25주년 기념일입니다. 식민지를 거쳐 분단과 전쟁을 겪은 두 나라는 한때 총부리를 겨눈 적국이었으나 1992년 국교를 재개한 이래 인적·물적 교류가 비약적으로 늘어나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각별한 사이가 됐습니다. 특히 국내에서는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이 중국 출신을 넘어서 다문화가정의 상징으로 떠올랐습니다. 한국과 베트남의 교류 역사와 함께 우리나라의 베트남 다문화 현황을 살펴보고 베트남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기획기사 3꼭지를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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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지난해 한국에서 혼인신고를 한 국제결혼 가정의 외국인 배우자 2만1천709명 가운데 베트남 출신(27.9%)이 처음으로 중국(26.9%)을 넘어섰다. 중국에서 건너온 결혼이민자는 상당수가 한국계 동포(조선족)인 것을 감안하면 '베트남댁'은 결혼이주여성을 대표하는 호칭이 됐다.
통계청의 지난달 발표를 보면 국내 이주노동자와 외국인 유학생 중에서도 베트남인은 중국인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학교, 공단, 농어촌 등 어디를 가나 베트남인을 쉽게 만날 수 있으며 대도시 곳곳에는 베트남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베트남에서도 한국의 존재는 뚜렷하다. 2016년 말 기준으로 베트남에 거주하는 동포는 12만4천458명에 이르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공장들은 베트남 경제성장의 엔진 역할을 한다. 방송, 가요,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패션, 음식 등 모든 분야에 걸쳐 한류 열기가 뜨거운 가운데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한국어 붐이 일고 있다.
한국과 베트남은 직선거리로 3천500여㎞ 떨어져 있지만 식민지를 거쳐 분단과 전쟁을 경험한 역사를 공유한다. 중국의 오랜 조공국으로서 유교와 한자 문화권에 속하고 한국·중국·일본 등지에서 성행한 북방불교(대승불교)의 전통을 잇는 것도 공통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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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한국-베트남 교류사
양국의 관계가 밀접해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교류는 800년 전 고려 시대에 이미 시작됐다.
베트남 리 왕조 6대왕의 일곱 번째 아들인 리롱뜨엉은 덕망이 뛰어나 형인 7대 왕이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극구 사양했다. 그는 조카인 8대 왕을 끝으로 리 왕조가 1226년 쩐 왕조로 교체될 때 중국 송나라를 거쳐 고려의 황해도 옹진반도로 망명했다. 그가 몽골군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우자 고려 고종은 지금의 황해도 금천군 지역인 화산 땅을 식읍으로 내려주고 고려 여인과 결혼시킨 뒤 화산군(花山君)으로 봉했다. 이용상으로 이름을 바꾼 그가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됐고 그 후손이 1천800여 명 살고 있다.
1995년 화산 이씨 종친회 대표들이 베트남을 방문하자 그곳에서는 왕족의 후손으로 극진하게 대우하고 명예시민증도 수여했다. 지금도 리 왕조의 태조가 즉위한 음력 3월 15일에 치르는 기념식에 화산 이씨 종친회 간부들을 초청한다고 한다.
이밖에도 중국 북경에서 조선 사신이 베트남 사신과 시를 주고받았다거나 조선인이 베트남에 표착했다가 돌아왔다는 등의 기록이 전하긴 하나 본격적인 교류의 역사는 두 나라 모두 식민지에서 해방된 현대에 들어서야 열렸다.
한국은 1945년 해방과 함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북이 갈라져 1950년부터 3년간 전쟁을 치른 뒤에도 분단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베트남도 2차대전 후 일본군이 물러가고 옛 식민통치국인 프랑스군과 전쟁을 벌여 1954년 독립을 쟁취했으나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남쪽의 베트남공화국과 북쪽의 베트남민주공화국(통칭 월맹)으로 분단됐다.
대한민국(남한)은 남베트남과 1956년 외교관계를 수립한 데 이어 1964년부터 1973년까지 6차례에 걸쳐 31만여 명의 군대를 파병해 월맹군과 싸웠다. 북베트남이 공산화 통일을 이루자 국교가 끊어졌다가 통일 베트남 정부가 '도이머이'(쇄신) 정책을 앞세워 경제 개방과 개혁에 나서면서 양국은 1992년 12월 22일 수교 협정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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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체류자·이주노동자·유학생 중국 이어 두 번째로 많아
수교 25년만에 양국 관계가 이처럼 비약적으로 발전할 줄은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한국과 베트남의 교역 규모는 지난해 451억 달러를 기록했다. 한국은 베트남의 3대 교역국이자 최대 투자국으로, 베트남은 한국의 4대 교역·투자 대상국이 됐다.
지난달 11일 베트남 다낭에서 정상회담을 한 문재인 대통령과 쩐다이꽝 국가주석은 2020년까지 교역 1천억 달러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비롯해 모든 분야에서 협력을 더욱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우리나라의 다문화가정은 31만 가구(가구원 96만 명)를 헤아리는데 대부분은 결혼이민자가 꾸린 가정이고 이 가운데 약 21%(6만1천 명)가 베트남 출신으로 추산된다. 법무부가 2014년 4월 결혼비자 발급 요건을 강화한 이래 해마다 국제결혼 건수가 줄어들곤 있지만 전체 다문화가정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올 10월 기준으로 국내 체류 외국인 213만5천49명 가운데 베트남 국적자는 16만6천956명(7.8%)으로 2위에 해당한다. 1위는 조선족을 포함해 101만1천237명(47.4%)인 중국이다.
베트남인은 취업으로 들어온 인력(동포비자 제외) 가운데서도 4만8천357명(8.4%)으로 2위, 유학생은 2만4천548명(17.9%)으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 결혼이주여성 취업률 낮고 이주노동자는 대부분 단순노무직
지난해 정부의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조사 결과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의 취업률은 57.2%로 중국(63.5%), 필리핀(58.1%)에 이어 세 번째였으나 대부분 단순노무자였고 임금 수준도 가장 열악했다. 학력도 캄보디아에 이어 두 번째로 낮았다. 이주노동자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전문직 종사자나 유명인을 찾아보기 어렵다.
김이선 한국여성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민자의 학력이 일자리 수준이나 사회 참여 정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이주 이전에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면 입국 후에라도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실장은 "2014년 베트남 노동부 설문조사 결과 57%가 '한국 직장에서 쌓은 경험이 귀국 후 업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면서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선진 기술을 익혀 모국으로 돌아간 뒤 안정적으로 정착해야 한국에 대한 호감이 높아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 애널리스트·경찰관·서울시 공무원·방송인 등도 등장
베트남 출신 전문직 종사자로는 한국외대·부산외대·청운대 베트남 관련학과 교수들과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 부쑤언토 연구원 등이 꼽힌다.
호찌민대 한국어과 출신으로 베트남 관련 NGO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온 루이엔 씨는 대구대와 서울대 대학원을 거쳐 2015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해 화제를 모았다.
2005년 베트남에서 파견 근무 중이던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2007년 입국한 팜티프엉 씨는 2015년 외사특채 경찰관으로 선발돼 지난해 9월부터 여수경찰서에서 근무하고 있다. 2005년 결혼과 함께 한국에 정착한 팜튀퀸화 씨는 2011년 서울시 공무원이 돼 여성가족정책실 외국인주민인권팀 주무관으로 일하고 있다.
방송인 가운데서는 흐엉(김지윤) 씨가 KBS 1TV 드라마 '산너머 남촌에는2'와 영화 '하류지역' 등에 등장했고 베트남어와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고 있다. '산너머 남촌에는1'과 KBS 2TV 토크쇼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하던 하이옌 씨는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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