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교 25년 한국 속 베트남] ② 어떻게 살고 있나

입력 2017-12-04 07:30   수정 2017-12-04 08:16

[수교 25년 한국 속 베트남] ② 어떻게 살고 있나

고향음식 그리울 땐 '아시안마트'로…축제·운동회로 친목 다져

20만 규모에도 베트남타운은 없어…"기업들 사회공헌 적극 나서야"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서울 왕십리역 2번 출구로 나와 100여m 걸어가면 아파트 상가 1층에 'ASIAN MART'(아시안마트)라고 적힌 간판이 눈에 띈다. 간판의 상호 위아래에는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필리핀,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네팔, 몽골 등 아시아 14개국의 국기가 붙어 있다.

쌀국수와 라이스페이퍼, 각종 채소, 향신료, 양념 등을 파는 식료품가게로 동남아 출신 주민들이 고향 음식을 해먹고 싶으면 꼭 들르는 곳이다. 바로 옆에는 강의실, 컴퓨터실, 상담실, 무료진료실, 다문화카페, 이주민사랑방 등을 갖춘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가 있고 베트남 식당과 함께 베트남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노래방까지 이웃해 있어 베트남인들의 사랑방으로도 불린다.

지난달 29일 오후 기자가 찾았을 때 한가한 시간인데도 10평 남짓한 좁은 가게에 연방 손님이 드나들었다. 베트남 출신 아내 이정은(25) 씨와 가게를 운영하는 박병수(48) 씨는 "인근 성수동 일대의 공장에서 일하는 베트남 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이 손님의 대부분이고 주말에는 서울 외곽 지역에서도 찾아온다"고 말했다.




◇ 용산 이태원엔 '퀴논거리', 퀴논시엔 '용산거리'

서울 용산구 이태원시장 옆 이면도로 보광로59길 330m 구간에는 '퀴논거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용산구는 베트남 퀴논시와의 우호교류 20주년, 자매결연 19주년을 기념해 상징물을 세우고 벽화를 그리는 등 단장한 뒤 지난해 10월 15일 준공식을 치렀다. 파월 한국군 맹호부대가 주둔했던 퀴논시에는 용산거리가 조성돼 그해 11월 선보였다.

용산구는 공사비 10억 원을 들여 바닥을 베트남 국화인 연꽃무늬로 꾸미고 가로등 기둥에는 베트남 전통 문양을 새겼다. 베트남 유학생, 결혼이민자, 기업 자원봉사자 등이 벽화를 그리고 조형물과 포토존 등을 설치했다. 거리 양옆에는 베트남 음식점을 비롯해 외국어로 적힌 간판이 많이 눈에 띄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이주노동자, 결혼이민자, 유학생 등을 합쳐 한국에 사는 베트남 출신(귀화자 포함)이 20만 명에 가까운데도 베트남인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베트남타운은 없다.

이주노동자들은 서울 영등포·구로·금천구와 경기도 안산·부천·의정부 등지에 많이 모여 살고 결혼이민자는 전국에 퍼져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단체를 결성하고 자조모임을 만들어 향수를 달래고 봉사활동에도 나선다.


◇ 여성연합회·유학생회 등 문화축제와 체육대회로 친목 도모

재한베트남여성연합회(회장 이홍옥)와 재한베트남공동체(회장 원옥금)는 지난 8월 27일 서울시의 지원을 얻어 서울 청계광장에서 '한베 교류축제'를 개최했다. 노래자랑도 펼치고 전통악기 연주와 패션쇼를 선보이는가 하면 고향 음식도 만들어 지나는 시민에게 맛을 보여줬다.

재한베트남여성연합회는 재한베트남교민회(회장 쩐하이린)와 함께 해마다 베트남 문화축제를 열고 있으며 재한베트남공동체는 '베트남 오지 어린이 돕기 베트남 노동자 축구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재한베트남유학생연합회(회장 팜하이찌엔)는 체육대회와 학술회의 등으로 친목을 다지고 한국인과의 교류를 꾀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 거주하는 베트남인 수효에 비해서는 조직이나 활동이 미약한 편이다. 결혼이주여성 대부분이 아직 육아에 매달릴 시기이거나 일을 나가고 있고, 이주노동자들은 거의 공단이나 농어촌에서 단순노무자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한베트남교민회 총무를 겸하고 있는 이홍옥 재한베트남여성연합회 회장은 "사는 곳이 멀리 떨어져 있고 각자 바쁘다 보니 시간을 내서 모이기가 힘들다"면서 "페이스북에 가입한 회원이 7천 명가량이어서 주로 SNS로 소식을 주고받는다"고 설명했다.

원옥금 재한베트남공동체 회장은 "일요일 아니면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데 주민센터 등 공공기관의 다목적홀을 빌려 모임을 열려고 하면 공무원도 쉬어야 한다며 안 된다고 하고, 고향 음식을 만들어 먹으려 해도 냄새가 난다며 거절하기 일쑤"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데다 사회주의권이어서 베트남인들의 종교 성향이 낮은 것도 공동체 활동이 취약한 배경으로 꼽히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필리핀은 가톨릭 성당, 캄보디아나 네팔 등은 불교 사찰이 이주민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응우옌티타오 목사가 이끄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베트남인교회, 틱뜨엉탄 스님의 인천 원오도량은 각각 베트남인 개신교와 불교 신자를 상대로 전도와 포교에 나서고 있다.




◇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중심으로 자조모임 속속 생겨나

전국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자조모임도 비교적 활발하게 움직인다. 서울 관악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우리 마음 하나 되기'는 베트남 전통 부채춤을 배우는 모임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연습하며 공연을 준비한다. 모인 김에 고향 소식도 나누고, 서울 생활에 관한 정보도 주고받고, 가끔은 시댁 흉(?)도 본다.

모임을 이끄는 귀화자 한선희 씨는 "강사는 따로 없고 동영상을 보며 따라 하다가 서로 가르쳐주는 방식"이라며 "춤을 통해 고향 사람끼리 모여 향수를 달래고 베트남을 한국 사람에게 알리는 일이 즐겁다"고 말했다.

자조모임의 분야는 춤, 노래, 악기 연주, 요리, 공예 등 다양하다. 이들은 만남이 거듭될수록 영역을 넓혀 한국 문화 체험에 나서기도 하고, 고향의 어려운 이웃을 돕거나 막 시집온 결혼이주여성의 멘토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 민간단체 나서 장애인 돕기, 친정 부모 초청, 장학사업 등 펼쳐

이들을 도우며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 협력에 앞장서는 단체들도 있다. 한베문화교류협회(KOVECA)는 베트남 문화축제를 공동으로 열고 정기 포럼을 개최하는가 하면 베트남 장애인들에게 의수족을 보내주는 등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베문화교류센터는 베트남어 교실과 신부 교실(결혼이주여성 사전교육)을 운영하며 장학사업도 벌인다.

월남전 참전자들은 한국베트남우호협의회를 결성해 '베트남댁' 친정 부모 초청, 베트남 전적지 주민 자립경제 지원, 베트남대 한국어과 학생 장학금 지급 등의 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국베트남교류협회도 창립됐다.

심상준 한베문화교류센터 이사장은 "짧은 기간에 인적·물적 교류는 엄청나게 늘어났으나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노력은 미흡했다"면서 "기업들이 베트남과의 교류를 통해 많은 경제적 이득을 얻고 있는 만큼 그에 걸맞게 적극적인 사회공헌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수천 한국베트남우호협의회장은 "민간외교 차원의 노력이 중요하다"면서 "베트남전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룬 우리가 먼저 베트남인에게 손을 내밀어야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고 두 나라가 진정한 동반자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역설했다.



heey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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