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국공립 오케스트라 여성 상임지휘자…12월 임기 만료
(수원=연합뉴스) 류수현 기자 =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관계는 흔히 부부관계로 빗대어 표현된다.
연애할 때는 몰랐던 상대방의 다양한 면모를 결혼 생활을 통해 속속들이 알게 되듯, 지휘자와 단원도 여느 부부 못지않게 서로의 깊은 속까지 들여다보는 사이라는 이유에서다.
임기 만료를 약 한 달 앞두고 2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만난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경기필) 성시연 예술단장 겸 상임 지휘자.
그는 "행복했다"라고 경기필과 지난 4년의 '결혼 생활'을 돌이켰다.
성 단장은 "직업 특성상 거처를 옮겨 다니며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겪지만, 경기필과 이별은 가족과 헤어지는 느낌"이라며 "그동안 단원들과 음악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기 때문에 서로 박수 치며 떠나보낼 수 있는 것 같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2014년 1월 경기필 부임 당시 국내 국공립 오케스트라 최초 여성 상임 지휘자라는 타이틀로 언론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경기필은 그가 상임 지휘자 커리어를 시작한 첫 오케스트라이기도 하다.
임기가 만료되는 이달 31일 이후 성 단장의 거취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내년 1월부터 6월까지 독일과 프랑스, 스웨덴, 이탈리아 등 유럽 곳곳에서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며 숨돌릴 틈도 없는 바쁜 나날이 예정돼있다.
성 단장은 "지난 4년 동안 경기필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라며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해선 에너지가 다시 풀로 채워져야 해서 해외 스케줄이 끝나는 내년 여름에는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을 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당초 2015년 12월까지가 임기였던 성 단장은 한 차례(2년) 더 연임했다.
경기필 예술단장 겸 상임 지휘자에 대한 연임 제한은 없지만, 성 단장은 단원들에게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올해 이별을 결심했다고 했다.
그는 "언어를 배울 때 실력이 느는 시기가 있는가 하면 정체기도 있다. 언제나 일정한 페이스로 발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라며 "경기필이 이 시점에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성 단장은 그동안 경기필을 널리 알리는 데 주력했다.
경기도뿐만 아니라 서울 무대에 올라 연주하는 횟수를 늘렸고, 시니어콘서트 등 자체 기획 공연과 유럽 투어 등을 통해 경기필의 활동 영역을 넓혔다.
올해 8월에는 베를린 뮤직 페스티벌(Musikfest Berlin)이 열리는 독일 베를린 콘체르트 하우스를 찾아 '예악'과 '무악', 호소카와의 '소프라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탄식' 등을 연주했다. 아시아 오케스트라 가운데 베를린 뮤직 페스티벌에 초청받기는 경기필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현재 경기필은 국내 주요 페스티벌과 오페라 음악 연주 1순위 초청 대상으로 꼽힌다.
성시연 단장은 "경기필은 이제 막 기지개를 켠 단계"라면서 "제가 떠나고 난 뒤에 오실 상임지휘자는 경기필이 어디를 가든 환영받는 오케스트라로 이끌어 주실 분, 음악적 영감을 더 많이 불어넣어 주실 분이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성 단장은 오는 19일과 20일 경기도문화의전당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베토벤 9번 교향곡과 브람스 이중 협주곡으로 경기필과 마지막 호흡을 맞춘다.
'화합과 소통'이라는 메시지를 지닌 베토벤 9번 교향곡은 송년 음악회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곡이다. 성 단장은 경기필에 대한 마음을 담아 선곡했다고 밝혔다.
그는 "헤어진 뒤 서로 다른 곳에 있더라도 '빛을 향해 나아가자', '내가 있는 곳에서 최상의 음악을 관객들에게 들려주자'라는 말을 경기필 단원들에게 전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성 단장은 "누군가가 블로그에 '경기필 공연은 볼 때마다 감동이 있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라면서 "앞으로 경기필이 음악과 청중을 위한 음악을 들려주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오케스트라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이어 "묵묵하게 단장을 믿고 따라와 준 단원들에게 '고맙다'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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