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부가 운용자산 규모 600조 원이 넘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공식화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1일 국민연금공단의 최고 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서 "국민연금은 국민이 맡긴 소중한 노후자금을 관리·운용하는 수탁자로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통해 투자 회사의 가치 향상을 추구하고 궁극적으로 기금의 장기적 안정성과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이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는 관리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필요한 만큼 스튜어드 코드 시행은 이르면 내년 하반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스튜어드십 코드란 연기금,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들이 투자한 상장 기업의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위탁받은 자금의 주인인 고객에게 이를 투명하게 보고하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을 말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관투자가가 경영진의 잘못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해 금융위기가 발생했다는 자성이 일면서 영국이 처음으로 도입했고, 지금은 미국, 캐나다, 일본 등 20여 개 선진국이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국민연금이 부당하게 찬성했다가 논란이 비등하면서 작년 12월부터 도입 움직임이 일어 현재 11개 자산운용사, 2개 투자자문사가 도입을 채택한 상태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도입을 통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공약했다. 국민연금의 도입을 계기로 더 많은 기관투자가가 앞으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의 운용자금은 지난 8월 현재 602조7천억 원이다. 올 3분기 말 기준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국내 상장 기업은 삼성전자(9.71%), SK하이닉스(10.4%), 현대차(8.1%)를 비롯해 278개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국민연금이 스트어드십 코드를 시행해 상장 기업의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경우 발생할 영향은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긍정적인 면은 국민연금이 '건전한 시장 감시자' 역할을 해 기업의 경영 투명성이 한층 개선될 것이란 점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기업 가치 제고와 연금 가입자의 수익증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복잡한 기업 지배구조와 소극적 배당 등으로 인한 자본시장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 해소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돼 더 많은 해외 투자자를 국내로 유치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반면, 재계가 우려하듯 국민연금이 기업의 의사 결정에 참여할 경우 경영이 간섭받을 수 있다는 점은 부정적인 면이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정부가 국민연금을 이용해 상장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른바 '연금 사회주의'나 '연금의 정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달 KB금융 임시주총에서 국민연금이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 선임에 찬성표를 던진 것을 놓고 정부의 친노동정책에 맞춘 '코드 표결' 이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박 장관은 이런 우려를 의식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신중하고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라면서 "고려대에 용역을 준 '국민연금 책임투자에 관한 연구'가 이달 완료되면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결국,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성공 여부는 이 제도의 장점은 최대한 살리되 기업경영을 지나치게 간섭할 소지를 최소화하는 데 달렸다고 볼 수 있다. 남은 기간 국민연금은 외부로부터 부당한 간섭을 배제할 독립성을 확고히 하고 기업 의사 결정 참여에 필요한 고도의 전문성을 갖추는 것을 급선무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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