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원옥 할머니, 난민여성에 "우리 같은 희생자 더는 안돼"

입력 2017-12-02 03:49  

길원옥 할머니, 난민여성에 "우리 같은 희생자 더는 안돼"

베를린서 난민 여성인권단체에 나비기금 전달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지금도 성폭력을 당하는 여성분들이 많이 있고 힘들게 산다고 들었습니다. 우리와 같은 희생자들이 생기지 않도록 많이 노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90) 할머니가 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성폭력에 시달리는 분쟁지역 여성들을 위한 활동에 격려를 보냈다.

길 할머니는 이날 'Women in Exile & Friends'라는 난민 여성을 위한 인권단체에 꼬깃꼬깃 모아온 용돈을 보태 나비기금을 전달했다.

나비기금은 분쟁지역 등에서 성폭력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을 위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중심이 되어 모으는 기금이다.

'Women in Exile & Friends'에서 활동하는 난민 출신 여성 활동가들이 할머니로부터 기금을 전달받았다.

이들은 "길 할머니가 전 세계를 다니면서 여성 인권을 위해 힘써주신 것처럼 우리도 힘을 얻어 여성 인권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할머니의 활동을 알리고, 어려운 여성들을 위해 힘써주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유럽의 난민시설을 찾아 심리치료를 하는 데 기금을 사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길 할머니는 이들에게 또 한 번 용기를 불어넣어 줬다.

그는 "제가 13세부터 가수가 됐으면 하는 희망이 있었다. 그런 꿈을 내버리지 않고 갖고 있었더니 90세가 되어서 그 꿈이 이뤄졌다"면서 "여러분들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갖고 있으면 어느 때인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길 할머니는 지난 여름 평소 즐겨 부르거나 실향민의 아픔을 담은 노래 20여 곡이 담긴 앨범을 발표했다.

그는 "13세의 희망이 90세에 가서 마음대로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라며 "세월이 흐르다 보면 그렇게 되는 수가 있으니 희망을 잃지 말고 열심히 살아가 달라"고 재차 당부했다.






이 대목에서 독일어로 통역하던 베를린 소재 시민단체인 코리아협의회의 한정화 대표가 목이 멘 채 울먹이는 등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길 할머니는 참석자들의 요청을 받고 자신의 앨범에 수록된 '한 많은 대동강'을 불렀다.

그는 "독일에서 서로 화합해 통일했던 것처럼 이제 한국도 멀지 않아 화합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에서 계속되는 위안부 관련 망언을 어떻게 이겨내느냐는 질문에 "세월이 흘러가면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다. 당장에 안 밝혀지더라도 밝혀질 것으로 믿고 편안한 마음을 갖는다"고 말했다.

길 할머니는 유럽연합(EU) 의회의 위안부 문제 해결 요구 결의안 채택 10주년을 맞아 베를린을 방문했다.

함께 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윤미향 상임대표는 길 할머니의 연세를 감안해 생애 마지막 해외 활동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이 길 할머니의 다섯 번째 독일 방문이다. 길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에 대한 증언활동을 위해서 유럽을 찾아왔다.

윤 대표는 "EU의 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이끈 정치인들과 시민사회가 현재 무력분쟁 속에서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들에게도 희망을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lkb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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