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의 글로벌시대] 800년 전 맺어진 사돈의 나라 베트남

입력 2017-12-05 07:30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800년 전 맺어진 사돈의 나라 베트남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1. 베트남 수도 하노이 외곽에는 베트남 최초로 명실상부한 독립왕국을 이룬 리(李) 왕조의 사당이 있다. 서기 1009년부터 217년간 이어온 리 왕조의 왕 8명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우리나라의 종묘(宗廟)에 해당한다. 중국의 패루(牌樓)와 닮은 정문에는 한자로 '李朝'(이조)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고 전각 안팎은 용무늬로 장식돼 있다. 리 왕조를 연 태조 리콩우언(李公蘊·이공온)은 국호를 대월(大越)이라 짓고 1010년 도읍을 호아르(華閭·현 닌빈)에서 오늘날 하노이 지역인 탕롱(昇龍)으로 옮겼다.

리롱뜨엉(李龍祥·이용상)은 리 왕조의 6대왕 영종의 일곱째 왕자로 태어났다. 형인 7대왕 고종이 그의 덕망을 높이 사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으나 거듭 사양했다. 조카인 8대왕 혜종 때 국정이 문란해져 병권을 쥐고 있던 왕후의 사촌이 왕위를 찬탈하고 1226년 쩐(陳) 왕조를 세웠다. 새 왕조가 망국 왕족을 모조리 잡아 죽이자 그는 중국 송나라를 거쳐 고려의 황해도 옹진반도로 망명했다. 베트남 '보트피플'의 원조 격인 이용상은 몽골군이 쳐들어오자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토성을 쌓고 유격전술을 펼쳐 전공을 세웠다. 고려 고종은 지금의 황해도 금천군 지역인 화산 땅을 식읍으로 내려주고 고려 여인과 결혼시킨 뒤 화산군(花山君)으로 봉했다. 화산 이씨 족보에는 리 왕조 태조(이공온)가 시조, 7세인 이용상이 중시조로 기록돼 있다. 현재 화산 이 씨는 국내에 1천800여 명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2. 그로부터 791년이 흐른 2017년 11월, 베트남 정부는 화산 이씨 32세이자 이용상의 26대손인 이창근(59) 씨를 3년 임기의 베트남 관광홍보대사로 임명했다. 이창근 씨가 베트남을 처음 찾은 것은 1995년의 일이다. 베트남전 당시 숙부인 이훈 씨(작고)가 남베트남(월남)에서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으나 월남 패망 후 교류가 끊겼다가 1992년 한국-베트남 수교 후 베트남 정부의 초청으로 종친회 간부들과 함께 방문한 것이다. 이창근 씨는 도므어이 당서기장을 비롯한 베트남 정관계 고위 인사들의 환대를 받았고, 그 뒤로도 해마다 리 왕조 태조가 등극한 음력 3월 15일에 맞춰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이창근 씨는 한국-베트남 민족문화교류협회를 창설해 양국 간 교류사업을 펼치다가 IMF 금융위기를 겪으며 사업에 실패하자 2000년 가족과 함께 베트남으로 이주했다. 베트남 정부는 그에게 내국인 지위를 부여하며 각종 세금과 공과금 면제 등 파격적인 혜택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 시민권은 2010년 얻었다. 그는 다낭에 공장을 세워 운영하는 한편 한국과의 합작으로 IT(정보기술) 사업에도 뛰어들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해 한동안 잊혔다가 이번에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베트남 국영 뉴스통신 VNA에 따르면 이 씨는 "베트남의 발전과 한국과의 우호 증진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3. 원옥금(42) 재한베트남공동체 회장은 베트남에서 영어 통역 일을 할 때 방직공장 건설 현장에 엔지니어로 파견된 남편 이상구(50) 씨와 만나 1996년 결혼한 뒤 이듬해 한국에 왔다. 남편은 자신이 베트남 왕족의 후손인 화산 이 씨 30세라고 소개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가깝게 느껴졌고, 양가의 부모도 흔쾌히 결혼을 허락했다. 입국 후 6개월 만에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신접살림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차렸다가 지금은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살고 있다.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는데, 지금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회사에 다니는 남편 사이에 고등학생 아들과 중학생 딸을 두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운 원 씨는 2004년 개설된 인터넷 카페 '한베가족모임'에 고향 사람들의 억울한 사연이 많이 올라오자 이들을 돕겠다는 생각에 2006년 방송통신대 법학과에 들어갔다. 졸업 후 베트남통번역상담센터 대표로 일하며 법원에서도 통역 봉사를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는 1년간 서울시 명예시장으로도 활약했다. 베트남 결혼이민자이자 화산 이씨 며느리로서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고, 한국 사람들이 베트남 사람들에게 편견을 갖지 않도록 힘쓰는 게 사명이자 보람이라고 한다.


지난달 11일부터 이달 3일까지 베트남 호찌민과 경북 경주에서는 '호찌민-경주 세계문화엑스포'가 펼쳐졌다. 호찌민 응우옌후에 거리에서 진행된 개막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영상 축하 메시지를 통해 "안남국의 왕자 리롱뜨엉은 고려에 귀화해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됐다"며 베트남과 한국의 유구한 교류 역사를 상기시켰다. 엑스포 기간 호찌민 오페라하우스에서는 리롱뜨엉(이용상) 왕자의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 '800년의 약속'이 선보였다. 이 작품은 오페라와 무용극으로 꾸며지기도 했다.

800년 전 바닷길 1만 리를 건너 이용상 왕자가 고려국의 사위가 된 인연은 한동안 끊어졌다가 오늘날 다시 이어지고 있다. 뿌리를 찾아 베트남으로 귀환한 화산 이씨 후손이 베트남 관광홍보에 앞장서는가 하면 화산 이씨의 며느리가 된 '베트남댁'이 서울시 명예시장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조선 숙종 때인 1687년 진상품을 싣고 가던 김대황 등 제주도민 24명은 베트남의 호이안 근처에 표착했다가 중남부 베트남을 지배하던 응우옌푹떤을 알현하고 그의 도움을 받아 이 가운데 21명이 살아서 돌아왔다고 한다. 그 뒤로도 풍랑에 떠밀려 베트남까지 흘러갔다가 돌아왔다는 기록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지금 베트남 국민 가운데 일부는 당시 표류하다가 그곳에서 정착한 조선인의 후예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12월 22일은 한국-베트남 수교 25주년 기념일이다. 우리가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이주노동자·유학생 등을 조선 시대 표류민의 후예로 여기고, 베트남인도 한국인을 화산 이씨의 후손처럼 대한다면 양국의 우호가 훨씬 두터워지고 상대에 대한 편견과 차별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heey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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