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도 길이 있다'…육지처럼 복잡한 선박 운항 법규

입력 2017-12-04 17:51  

'바다에도 길이 있다'…육지처럼 복잡한 선박 운항 법규
낚시 어선·급유선 시속 18∼22㎞로 같은 방향 운항 중 추돌



(인천=연합뉴스) 신민재 기자 = 13명의 사망자와 2명의 실종자를 낸 인천 영흥도 낚시어선 추돌사고는 어두운 새벽에 좁은 수로(협수로·狹水路)를 운항하던 배들이 부딪쳐 빚어진 인재로 드러나고 있다.
해경은 낚시어선 선창1호(9.77t)와 추돌한 급유선 명진15호(336t)의 선장과 갑판원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이들이 사고 당시 추돌을 막으려는 노력을 제대로 했는지와 관련 법규를 준수했는지가 수사의 핵심이다.
크고 작은 배들이 자유자재로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바다에도 육지처럼 길이 있고 지켜야 할 교통법규가 있다.
특히 육지와 가까운 연안에는 곳곳에 암초와 갯벌, 양식장이 있고 배가 다닐 수 있는 수심을 갖춘 수로가 한정돼 있어 더 엄격한 법규가 적용된다.
이번 사고가 난 인천 옹진군 영흥대교 남측 해역은 폭 500m, 수심 10∼18m의 협수로였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법률인 해사안전법은 좁은 수로를 항행하는 선박이 안전을 위해 수로 오른편 끝쪽에서 항행하라고 정하고 있다.
선박 충돌 및 추돌을 방지하기 위해 속력을 줄이거나 기관 작동을 정지·후진해 선박의 진행을 완전히 멈추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명진15호 선장은 좁은 수로에서 낚싯배를 발견하고도 추돌을 피하려는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사고 해역은 낚시영업 허가를 받은 10t 미만의 영흥도 소형 어선 수십 척이 주로 이용하는 수로이지만 수백t에 달하는 선박도 다닌다.
북쪽에 있는 인천과 남쪽의 평택을 오가는 배는 중간에 영흥도 주변 해역을 거치는데, 영흥도 서쪽의 먼바다로 돌아가는 것보다 영흥도와 선재도 사이에 놓인 영흥대교 밑을 통과하는 게 30분 이상 빠르기 때문이다.
선창1호와 추돌한 명진15호는 사고 발생 1시간 35분 전인 4일 오전 4시 30분 인천 GS부두를 출항해 남쪽에 있는 평택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평택 동부두에서 급유를 기다리는 선박에 연료를 넣을 예정이었다.
인천지방해양수산청 관계자는 4일 "사고 해역은 인천항에서 다소 떨어진 곳이어서 선박의 운항 속도가 제한되는 항로는 아니었다"며 "선박입출항법의 적용을 받는 항로가 아니어도 선박들은 해사안전법상의 다양한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경 조사 결과 사고 당시 급유선 명진15호는 12노트(22.2㎞)의 속력으로 남서쪽으로 향했고, 낚시어선 선창1호는 10노트(18.5㎞)의 속력으로 남쪽으로 진행했다.
일선 선장들은 10∼12노트의 속력이 시계나 기상여건 등을 따지지 않고 절대적인 기준에서 과속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배가 이처럼 한 방향(남쪽)으로 나란히 달리는 상황은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한 선장은 "앞서 달리는 배에 의해 발생하는 너울 때문에 같은 방향으로 운항하는 배들은 대개 일렬로 간다"며 "앞서가는 배가 느릴 경우, 후미의 배가 추월하는 상황이나 서로 먼저 가려고 속력을 높이는 상황에서는 충돌 위험이 상존한다"고 지적했다.
명진15호 선내에서 선박 항법장비(GPS플로터)와 폐쇄회로(CC)TV를 확보한 해경은 선장과 선원들을 상대로 사고 당시의 정확한 상황을 조사하고 있다.
smj@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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