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0일 콩쿠르 우승 후 첫 국내 독주회…"슬픈 여운 남는 곡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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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아무리 비행기를 많이 타도, 아무리 도시가 자주 바뀌어도 아무 데서나 잠을 잘 자는 편이에요. 일상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어도 연주나 콩쿠르에 크게 영향을 받는 편은 아닌 것 같아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28)은 지난 6월 미국 최고 권위의 피아노 대회인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밀려드는 연주 섭외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1일(현지시간) 독일에서 전화를 받은 그는 콩쿠르 이후 연주한 횟수를 묻는 말에 "숫자로 세진 못하겠다"며 웃었다.
"지난달에만 15개 도시에서 연주했어요. 스코틀랜드에서 두 차례 협연하고 다음 날 뉴욕에 가서 그날 밤 자정 비행기로 한국에 오기도 했죠. 내년 연주회도 벌써 100회 정도 잡힌 것 같네요."
듣기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스케줄이지만 그는 "사실 그렇게 힘든 건 못 느낀다.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
"체력적으로 건강한 편이에요. 비행기를 탄다거나 휴식 시간을 갖게 됐을 때 충전이 잘 되기도 하고요. 아무 데서나 잘 쉬고, 잘 자는 편인 것 같아요. 물론 연주 전에는 저도 예민해지죠. 공연 전에는 무조건 혼자 있으려고 하고 필요 이상으로 말을 섞는 것도 피해요. 그러나 공연 이외에는 제 감정을 잘 조절하는 편인 것 같아요."
이런 성격 덕분에 반 클라이번 우승 이후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와 연주 리뷰 속에서도 그는 다소 덤덤한 편이다.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 조성진과 함께 한국을 이끌 대표적 '클래식 스타'로 언급되는 것에 대해서도 "제가 만든 수식어나 표현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관심 둘 부분은 아닌 것 같다"며 웃었다.
"특별히 노력하는 건 아닌데 굳이 신경을 안 써도 되는 문제는 자연스럽게 머리에 잘 안 들어와요. 긍정적이라기보다는 지나간 일들에 대해 지나치게 연연해 하지 않는 편이에요. 삶은 멈춰있는 게 아니라 과정의 연속이잖아요."
지금까지의 과정도 처음부터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알려진 대로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누나를 따라 학원에 갔다가 피아노를 배우게 됐다. 다른 연주자들보다 늦게 피아노를 시작한 편이다.
이번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전에도 국제 콩쿠르에서 7번 우승하며 '콩쿠르 왕'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커리어를 쌓기보다는 금전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콩쿠르를 매년 2~4회씩 출전했다"고 말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했다.
반 클라이번 우승이 명성, 경제적 여유, 연주 기회 등 모든 면에서 그에게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줬다.
"집값을 제때 내기도 사실 쉽지 않았는데, 이젠 어머니께 다달이 용돈을 드릴 수 있게 된 게 기쁘네요."
그는 오는 15일과 20일에 각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IBK챔버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콩쿠르 우승 이후 첫 국내 리사이틀이라 벌써 음악팬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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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연주됐던 곡들로 양일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15일 공연에서는 그레인저의 '장미의 기사' 중 사랑의 듀엣,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9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2번 등을 연주한다.
20일에는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 다장조,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제6번,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30번 등이 연주된다. 라벨의 '라 발스'는 양일 프로그램에 모두 포함됐다.
그는 "콩쿠르 레퍼토리들은 다 소중하다"면서도 "오랫동안 제가 가장 좋아한 작곡가는 슈베르트"라고 설명했다.
"슈베르트 음악은 들으면 슬픈 여운 같은 게 길게 남아요. 그 잔향이 가슴 속에 오래 머무는 게 좋아요. 뭐가 됐든 감정이 느껴지는 연주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가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연주하면 관객들도 그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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