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각국과 프랑스도 잇따라 공개 반대…대사관 이전은 보류할 듯
백악관 "대통령 입장 분명, 언제 하느냐의 문제"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쏟아지는 국제 사회의 우려에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공식 인정하는 결정을 며칠 미뤘다.
호건 기들리 백악관 부대변인은 4일(현지시간) 에이포스원 기내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재 텔아비브에 있는 주 이스라엘 미국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 여부와 관련, "오늘은 아무런 조치가 없다"면서 "며칠 안에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AP·AFP 통신이 보도했다.
기들리 부대변인은 "대통령은 처음부터 이 현안에 대해 분명한 입장이었다. 할지 안 할지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하느냐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날은 트럼프 대통령이 1995년 제정된 '예루살렘 대사관법'에 따라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길지 아니면 이전을 연기할지를 정해야 하는 데드라인이다. 이 법은 미국 대통령이 국익과 외교적 이해관계를 고려해 대사관 이전을 6개월간 보류할 수 있다는 유예조항을 뒀다.
역대 대통령들이 6개월마다 대사관 이전을 보류하는 문서에 서명해왔으며, 대사관 이전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트럼프 대통령조차 지난 6월 한 차례 연기 결정을 했다.
그러나 6개월의 유예 기간이 다시 끝나가면서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사관을 이전하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인할 것이라는 관측이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이다.
AFP에 따르면 미국 정계 일각에서는 이런 조치가 보수층 유권자와 고액 후원자들에게 구애할 수 있는 방안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막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국제 사회의 반발이 그만큼 강력하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팔레스타인은 물론 중동에서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마저 반대 의사를 공개 표명한 상태다.
주미 사우디 대사인 칼리드 빈살만 왕자는 성명을 내 "예루살렘의 지위에 대한 미국의 어떠한 발표도 그 지역의 긴장을 높이고 평화 프로세스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고, 아이만 사파디 요르단 외교장관도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과 통화해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염려했다. 이집트 외교장관도 틸러슨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들은 미국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평화 노력에 협력하지 않겠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거나 대사관을 옮길 경우 새로운 '인티파다'(반이스라엘 민중봉기)를 일으키겠다고 경고, 대규모 폭력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이런 가운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통화해 우려를 표명하고 "어떤 결정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협상의 틀에서 내려져야 한다"며 반대 대열에 합류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장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AFP는 복수의 외교관들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대사관 이전 보류 문서에 마지못해 서명하고, 오는 6일 연설을 통해 '예루살렘이 수도'라는 이스라엘의 주장에 지지를 표명하는 선에서 사태를 봉합할 것으로 전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수도라고 인정하되 대사관 이전은 당장 실행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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