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풀로스 그리스 대통령과 설전 벌여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그리스를 방문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방문 일성으로 양국의 국경 획정 등 민감한 사항 등을 규정하고 있는 '로잔 조약'의 개정을 요구하며 그리스에 당혹감을 안겼다.
터키 국가 원수로는 65년 만에 처음으로 이웃 그리스를 찾은 그는 7일 아테네에 도착해 프로코피스 파블로풀로스 그리스 대통령,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와 차례로 회담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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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TV로 생중계된 파블로풀로스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 모두 발언에서 1923년 체결된 로잔 조약의 개정 필요성을 주장하고, 그리스 북동부에 거주하는 터키 소수민족이 제대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불쑥 꺼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파블로풀로스 대통령에게 "쉽지는 않겠지만 94년의 세월이 지났고, 그 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다"며 로잔 조약이 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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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풀로스 대통령은 이에 대해 "그리스와 유럽연합(EU) 변경의 국경을 획정하고 있는 로잔 조약은 그 자체로 유효한 것으로, 수정이나 개정이 필요없다"고 반박했다.
그리스 최고의 법 전문가로도 꼽히는 파블로풀로스 대통령은 "로잔 조약 아래에서는 영토 분쟁의 여지가 없으며, 그리스 내의 이슬람 소수집단의 지위도 명확히 규정돼 있다"고 덧붙였다.
통상 언론에 공개되는 정상회담의 모두 발언에서는 형식적인 말만 오가고, 깊숙한 논의는 비공개 회담에서 이뤄지는 것이 외교 관례인 점에 비춰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날 정상회담 일성은 그리스 측을 당황하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은 지적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그리스 방문 전날인 6일에도 그리스 스카이TV와의 인터뷰에서 로잔 조약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여 그리스 당국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리스 정부 대변인은 이날 에르도안의 스카이TV 인터뷰 직후 "그리스 정부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방문이 양국 사이에 벽이 아니라 다리를 놓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며 "확고한 로잔 조약의 토대 위에서만 두 나라의 협력이 가능하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한편, 에르도안 대통령과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와의 만남에서는 난민 문제, 양국의 경제 협력, 교착 상태에 빠진 터키의 EU 가입, 에게 해를 둘러싼 양국의 영유권 논쟁 등 다양한 현안이 논의된 것으로 관측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또 이 자리에서 작년 7월 터키 군부의 쿠데타 모의가 불발된 직후 그리스에 넘어가 망명을 신청한 터키 군인 8명의 송환을 다시 한번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스는 과거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투르크의 식민지였던 터라 터키에 대한 국민 감정이 좋지 않고, 에게 해 영유권, 키프로스 통일 문제 등을 놓고 해묵은 갈등 관계에 놓여 있으나 에르도안 대통령 집권 이후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인 터키와 난민 문제에 있어 긴밀히 협조하는 등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그리스 방문 이틀째인 8일에는 터키계 소수 민족이 다수 살고 있는 그리스 북동부 트라키아를 방문할 예정이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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