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직 특혜채용 후 정규직 전환…기관장이 면접장 들어가 지원사격
취업준비생 울리는 채용비리…'짜고 치는 고스톱' 수준 심각
정부, 의심 사례 수사 의뢰 방침…연말까지 특별 점검 실시
(세종=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1 "응시자·면접관·기관장이 같은 사조직 출신"
2014년 한 공공기관의 채용에 지원한 E 씨는 면접장에 들어간 순간 합격을 직감했다.
면접관 5명 가운데 3명이 자신과 같은 사(私)모임 회원이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E 씨가 지원서를 낸 공공기관의 기관장 F 씨가 같은 모임 회원이었고 F 씨는 인사위원회 심의 절차 없이 E 씨를 채용하도록 지시했고 E 씨는 손쉽게 '신의 직장'에 몸담게 됐다. 사조직이 채용을 좌우한 셈이다.
#2 "안되면 될때까지 기준 바꿔라"
L 기관은 2014년 채용 때 원래 서류전형 합격자를 선발 예정 인원의 2∼5배수로 뽑기로 했다.
하지만 합격시켜야 할 특정 인물의 성적이 합격권에 들지 못하자 서류전형 합격자를 30배수로 확대했다.
그런데도 목표 달성이 안 됐는지 다시 45배수로 늘렸고 결국 특정인이 서류전형을 통과했으며 채용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정부 점검에서 드러난 공공기관의 비리 사례를 보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할 정도로 원칙을 어긴 채용이 난무했다.
인맥과 연줄을 동원한 이들은 능력과 상관없이 채용되고 이로 인해 다수의 취업준비생이 영문도 모르고 들러리를 선 꼴이 됐다.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최근 실시한 전수 조사를 보완하는 심층 조사를 시행할 계획이며 이날 공개한 사례 등 채용비리로 의심되는 사안은 검토 후 수사 의뢰할 계획이다.
우선 기관장이나 기관 고위인사가 청탁을 받고 특정인을 부당하게 채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복수로 확인됐다.
2011년 모 기관장 B 씨는 지인에게서 자식 C 씨의 이력서를 받아 인사 담당자에게 주면서 채용하라고 지시했다.
인사 담당자는 C 씨를 일단 계약직으로 채용했는데 특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부정 채용된 C 씨가 이후에 정규직으로 전환된 것이다.
다른 공공기관은 기관장이 나서 공고 기준을 무시한 채용을 강행했다.
공고문에 전공을 상경계열 박사로 제한해놓고 이와 무관한 D 씨를 서류전형에서 통과시켰다.
기관장은 면접 시험장에 멋대로 들어가 D 씨를 지원하는 언급을 했고 결국 D씨가 합격했다.
면접관이 아닌 기관장이 시험장에 임의로 들어간 것이나 심사에 영향을 줄 발언을 한 것에 대해서 당시 문제 제기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공공기관에서는 작년에 면접장에 면접위원도 아닌 인물이 입실해 면접 대상자 2명 중 1명에게만 질문하고 결국 질문을 받은 인물이 합격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심사위원을 내부인으로만 구성해놓고 응시자 부모의 성명·직업·근무처가 기록된 응시원서를 제공한 일도 있었다.
결국, 같은 기관에 근무하는 고위급 자녀가 면접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서 채용됐다.
채용비리에 연루된 기관은 성적 조작도 일삼았다.
공공기관에서 채용을 담당하는 G 씨는 올해 특혜 채용을 대상자인 H씨가 경력점수가 서류전형을 통과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G씨는 정상적으로 전형을 진행했을 때 고득점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다른 응시자의 경력점수를 깎아서 문제를 해결했다.
다른 공공기관에서는 지역 유력 인사 I 씨의 자식을 채용하기 위해서 면접 때 가산점을 줘야 할 다른 응시자에게 가점을 주지 않았다. 결국, I씨 자식이 채용됐다.
이밖에 채용 공고를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에 공시하지 않고 협회 등의 홈페이지에만 공지해 같은 기관의 전직 고위인사가 추천한 인물들을 특혜 채용한 사례도 있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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