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서 주민불편은 물론 코미디 같은 상황 연출
원정 통학 예사, 집 양쪽 가게서 파는 종량제 봉투 다른 경우도
[※ 편집자 주 = 광역신도시나 혁신도시 개발로 한동네에 살지만, 행정구역이 달라 불편을 겪는 곳이 적지 않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이를 개선하고자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최근 서울 송파, 경기 성남·하남 등 5개 지자체가 엮인 위례신도시 주민불편 해소를 위해 행정안전부와 해당 지자체가 한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대기도 했습니다. 문 정부는 행정구역을 넘어선 협력사례를 만들어 전국적으로 전파할 계획입니다. 연합뉴스는 생활권·행정구역 불일치로 인한 불편과 문제점 등을 들춰보고 바람직한 대안을 찾아보는 기획물 3편을 송고합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손상원 임채두 기자 = 도시성장 발판과 지역균형발전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던 광역신도시·혁신도시가 홍역을 앓고 있다.
사람 발길이 닿지 않던 땅을 개발해 공공기관을 이전하고 도로를 확충했지만 보다 편리하고 안전한 환경을 원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높기만 하다.
나뉜 행정구역과 쪼개진 생활권 때문에 자녀 교육과 출퇴근에 애로를 겪는 주민들은 강한 톤으로 대책 마련을 호소한다.
◇ '낮에는 무안, 밤에는 목포'…시·군 오가는 남악신도시 주민
전남도청 공무원 조행정(45·공무원)씨는 하루 두 번 시·군 경계를 넘는다.
목포시 옥암동 아파트에서 직선거리로 1㎞가량 떨어진 무안군 삼향읍 전남도청을 오간다.
조씨는 2005년 전남도청이 광주에서 전남 무안으로 이전한 직후 광주에서 전남으로 주소를 옮겼다.
남악신도시에 있는 아파트를 두어 차례 옮겨 다닌 끝에 2년 전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했다.

집과 직장이 가까워 출퇴근이 한결 편해졌지만, 목포에서 저녁 회식이라도 하는 날에는 머리가 복잡해진다.
택시 영업구역이 무안과 목포로 구분되다 보니 목포 택시 운전사들은 무안에서, 무안 운전사들은 목포에서 손님을 태울 수 없다.
영업구역을 넘어 승객을 태웠다가는 과태료를 물 수도 있다.
가장 큰 고민은 자녀 교육이다.
같은 생활권인 남악신도시에 학교를 두고도 옥암동 학생들은 차를 타고 20∼30분을 가야 하는 목포 원도심으로 배정받기도 한다.
목포교육지원청은 가뜩이나 학생 수가 줄어드는 마당에 목포에 주소를 둔 학생을 무안 학교에 보낼 수도 없는 입장이다.
조씨는 "옥암동 주민 가운데는 자녀 학령기에 맞춰 주소가 무안인 인근 아파트로 이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오른쪽 슈퍼마켓에서는 무안군 종량제 봉투를, 왼쪽 슈퍼마켓에서는 목포시 봉투를 팔기도 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20ℓ 기준 목포 봉투는 400원, 무안은 320원으로 가격도 다르다.
무안 삼향읍을 중심으로 목포 옥암동·부주동 등을 아우르는 남악신도시는 앞으로 오룡지구, 임성지구 개발도 앞뒀다.
도시 규모가 커질수록 주민의 통합 요구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자치단체들의 조정 능력은 주민 열망에 한참 못 미친다.
목포시는 통합에 대체로 찬성하지만, 무안군은 단호하게 반대한다.
설사 통합에 대한 공감이 이뤄진다 해도 인구 유출을 감수하면서 특정 구역이나 인구를 상대방 시·군에 넘겨주기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목포시 관계자는 "주민불편을 고려해 통합을 바라지만 무안군과 입장 차이가 커 관 주도로 문제를 풀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며 방관적 자세를 보였다.
무안군 관계자는 "앞으로 오룡지구를 개발하면 인구가 더 늘어 10만을 넘을 수도 있다"며 "목포시와 통합보다는 시 승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 도로 사이에 두고 '정서적 거리감'…"도시 통합해야 불편 해소"
행정구역이 전북 완주와 전주로 나뉜 전북혁신도시 주민도 생활 불편을 호소하기는 마찬가지다.
전북혁신도시 완주 지역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서정학(33)씨는 늦은 밤이면 택시를 잡는 데 애를 먹는다.
같은 혁신도시라도 전주 지역에 사는 친구는 승차거부 없이 수월하게 택시에 오르지만 서씨는 냉대를 받아야 했다.
주거지와 상업시설이 적은 완주로 갈 경우 빈 차로 돌아 나와야 하는 부담 때문이다.
택시기사들은 '완주'라는 얘기만 듣고 손사래를 치기 일쑤다.
사실상 서씨와 친구 집은 완주와 전주를 나누는 경계 도로 양옆에 있지만, 이웃사촌이라기에 '정서적 거리감'은 크기만 하다.
서씨는 "전북혁신도시는 전국 우수사례로 꼽힐 만큼 정비가 잘된 곳이라고 들었지만 사실상 외딴섬과 같다"며 "한 구역에서 친구와 생활하지만 전주쪽과 달리 완주쪽 아파트 주민들의 소외감은 더욱 큰 것 같다"고 토로했다.

혁신도시 치안을 담당하는 곳도 둘로 갈려 주민은 불안하다.
경찰은 이곳에 완주 지역을 담당하는 이서파출소와 전주 지역을 관할하는 혁신파출소를 운영하고 있다.
주소가 완주군으로 된 서씨 집은 인근 전주권 혁신파출소가 아닌 7㎞나 떨어진 이서파출소 관할권에 있다.
가로등이 충분치 않아 밤거리가 불안한 여성, 이웃 간 사소한 다툼으로 도움으로 필요한 주민은 경찰의 출동 지연에 전전긍긍해 하고 있다.
경찰은 신고 접수 지역에서 가까운 파출소 직원이 출동하기 때문에 치안 공백은 없다고 설명하지만 '관할'을 따지는 행정편의주의가 언제 불거질지 모를 일이다.
완주 혁신도시 주민 김모(35)씨는 "혁신도시에도 웬만한 상업시설은 물론 술집이나 유흥주점도 있어 범죄 발생 소지가 크다"면서 "치안 수요를 담당할 곳을 일원화해줘야 주민들이 더욱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구가 밀집할수록 촘촘한 행정서비스와 편리한 생활을 원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전주시-완주군 통합 논의는 부진하다.
최근 전주시는 혁신도시 내 전주 지역 행정구역을 전주 완산구와 덕진구 중 한 곳으로 일원화하는 일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하물며 기초단체 간 통합은 더욱 민감한 사안인데다 장벽이 많아 결코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와 자치단체의 설명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오래전부터 전주-완주를 통합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주민 간 첨예한 대립으로 무산된 바 있다"며 "전북혁신도시 주민의 불편을 잘 알고 있지만 이런 민원들은 통합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풀릴 수가 없는 문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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