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야당 "에르도안 방문, 그리스 공격할 발판 내준 '대실패'" 비판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65년 만에 터키 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앙숙이자 이웃인 그리스를 방문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그리스 방문 이틀째이자 마지막 날인 8일 그리스 북동부에서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는 터키 공동체에 걸음을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수 천 명의 환영 인파 속에 북동부 트라키아의 마을을 코모티니를 찾아 현지 이슬람 사원에서 진행된 기도회에 참석하고, 이슬람 지도자들과 오찬을 함께 했다.
그는 터키어를 쓰는 학교 외부에서 행한 연설에서 "이곳에는 15만 명에 달하는 우리 동족이 있다"며 "여러분들은 터키와 그리스를 잇는 다리"라고 강조했다.
그리스 당국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이 지역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봉쇄하고, 헬리콥터의 선회 비행 속에 다수의 경찰 병력을 배치하는 등 보안을 대폭 강화했다.
마을 중심 광장 인근에서는 100여 명의 반(反) 에르도안 시위대가 결집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마을 주민 코스타스 카라이스코스는 AP통신에 "우리는 에르도안의 방문을 원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주민들의 이 같은 일반적인 정서를 표현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그리스 당국은 에르도안이 이날 터키 공동체를 만나 어떤 돌출 발언을 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전날 프로코피스 파블로풀로스 그리스 대통령,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와의 회담에서 양국 관계를 훼손할 수 있는 까다로운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며 그리스에 당혹감을 안긴 바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양국의 국경 획정과 그리스에 살고 있는 터키계 주민, 터키에 거주하는 그리스계 주민의 지위와 권리 등 민감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는 '로잔 조약'의 개정, 쿠데타 가담 병사의 송환, 터키계 주민의 권리 보장 등을 직접 요구하는 등 거침 없는 모습을 보였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작년 실패로 돌아간 쿠데타 모의 이후 전방위적인 인권 탄압을 가하며 독일 등 유럽연합(EU) 주요 국가와 마찰을 빚고 있는 가운데, 그리스 정부는 터키와 EU의 경색된 관계를 푸는 중재자 역할을 하는 동시에 양국 간 해묵은 갈등을 완화하고 관계 개선을 꾀할 목적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을 자국에 전격 초청했다.
그러나, 양국은 정상회담에서 로잔 조약, 에게 해를 둘러싼 영유권 문제, 작년 터키 군부의 쿠데타 모의가 불발된 직후 그리스에 넘어가 망명을 신청한 터키 군인 8명의 송환 문제 등을 놓고 공개적으로 설전을 벌이며 다시 한 번 껄끄러운 관계를 고스란히 노출했다.
그리스 야당은 에르도안의 이번 방문은 그에게 그리스의 정책을 공격할 발판을 제공한 '이틀 간의 대실패'라고 규정하며 정부를 비난했다.
그리스 정부는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솔직한 의견 교환은 궁극적으로 양국 관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항변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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