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시 번역 어렵지만 문학의 감동은 통하네요"

입력 2017-12-11 16:32  

"한중 시 번역 어렵지만 문학의 감동은 통하네요"
제1차 한중시인회의서 양국 시인들 함께 논의



(청송=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강물을 보세요 우리들의 피를/바람을 보세요 우리의 숨결을/흙을 보세요 우리들의 살을.//구름을 보세요 우리의 철학을/나무를 보세요 우리들의 시를/새들을 보세요 우리들의 꿈을."(정현종 '이슬' 중)
11일 경상북도 청송 대명리조트에서 열린 제1차 한중시인회의에서 정현종(78) 시인이 자신의 시 '이슬'과 '초록 기쁨- 봄숲에서'를 낭독했다.
'번역의 이상과 현실'을 주제로 한 이번 행사에서 한국 시인 4명과 평론가 2명, 중국 시인 3명과 평론가 2명은 양국의 시인들이 직접 낭독하는 시를 듣고 이를 이해하고 번역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과 극복 방안 등을 논의했다.
중국 수도사범대 문과대학 교수인 평론가 우쓰징(75)은 정 시인의 낭독을 듣고 "진정한 시인이라면 자연의 아들로서 자연을 사랑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정현종 선생을 진정한 자연의 아들이라고 생각한다. 이 두 편의 시에서는 자연을 우러러보고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고 평했다.
이어 "이 시를 정 선생의 낭송과 중국어로 이해할 수밖에 없지만, 내가 보기에 중국어 번역은 비교적 성공한 듯 보인다. 함축적이고 음악적인 느낌이 어느 정도 보전됐다고 생각한다. 시인의 풍부한 상상력을 보여줬다. 사유의 넓이에 매우 놀랐고 한국 시의 독창성과 생생한 힘에 큰 감동을 했다"고 극찬했다.
국내 1세대 문학평론가이자 한국문학번역원장을 지내기도 한 김주연(76) 평론가는 "우쓰징 씨의 말씀을 듣고 역시 범우주적이고 깊이 있는 시 작품이 세계적인 차원에서 조명을 받으면 이렇게 핵심과 본질이 드러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정 시인에게 "'자연의 아들'이란 찬사에 만족하느냐"고 물었다.
정 시인은 크게 웃으며 "아주 만족한다. 우쓰징의 평에 감명받아서 '자연의 아들'을 앞으로 내 호(號)로 쓸까 한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시인들이 국적을 떠나 공통점을 가진 부분은 말에 대한 숭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시인에게는 어떤 언어도 모국어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에 상당히 공감한다"고 덧붙였다.
다음 순서로 중국의 대표적인 여성 시인 수팅(65)의 시 낭독이 이어졌다.



"천성이 고생스럽다 말하기를 싫어하지만/고생이 영원히 끝난 것은 결코 아니다/퉁소와 비파 소리가 저녁 햇빛 속에서/세상에 만연한 근심과 슬픔을 상기시킬 때/너는 머릿수건의 한 끝을 입으로 문다.//이렇게 우아하게 바다와 하늘 사이에 서 있으면/사람들은 잊고 만다, 너의 헐벗은 맨발이/밟았던 염전과 암초들은//그래서 표지와 삽화에서/너는 풍경이 되고, 낭만적인 이야기가 된다"('惠安女子(혜안의 여자)' 중)
수팅은 "'혜안'은 복식과 풍속이 독특한 소수민족이 사는 곳이다. 이곳의 여자들은 집안의 모든 일을 하면서도 지위가 아주 낮고 아이를 낳기 전에는 남편 집에서 살 수 없으면서 일은 남편 집에 가서 계속해야 한다. 그런 비참한 혜안의 여자가 복식이 아름답다는 이유로 사진작가들의 모델이 되는데, 이런 슬픔을 시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시인들은 시의 배경에 관한 이런 설명을 듣고서야 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어 이시영(68) 시인이 시 '당숙모'를 낭독했다. 이 시는 특히 의성어와 의태어가 많아 번역에 큰 난제를 남겼다.
"비 맞은 닭이 구시렁구시렁 되똥되똥 걸어와 후다닥 헛간 볏짚 위에 오른다/그리고 아주 잠깐 사이 눈부신 새하얀 뜨거운 알을 낳는다/비맞은 닭이 구시렁구시렁 미주알께를 오물락거리며 다시 일 나간다" ('당숙모' 전문)
중국 평론가 쟝뤄수에(54)는 "번역자가 중국어의 비슷한 의성어 의태어로 번역해 운율을 살리려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인다. 원문의 뜻이 그대로 전달되지는 않겠지만, 마지막 구절이 특히 눈에 띈다. 생명 탄생이라는 위대한 창조적인 일을 비속한 언어로 묘사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라고 평했다.
김주연 평론가는 "이런 시의 번역 문제를 종합적으로 보려면 의식의 문제와 양식의 문제를 다뤄야 하고 비교문학까지 들어가야 한다. 방언이라든지 의성어 의태어, 비교언어학, 음성학, 음운론 등 문제들이 대두되지 않을 수 없다. 번역에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걸 오늘 이 자리에서 깨달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정리했다.


min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