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로봇→인간→로봇' 평창 성화가 연출한 드라마

입력 2017-12-11 19:21   수정 2017-12-11 19:25

'인간→로봇→인간→로봇' 평창 성화가 연출한 드라마
털모자 쓴 휴보·'인간' 과학영재 태운 FX-2 등장
성화 봉송 역사상 첫 로봇 주자…짧았지만, 큰 발자취



(대전=연합뉴스) 이재림 기자 =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성화가 과학기술도시 대전에서 인간과 로봇을 하나로 이어주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11일 오후 눈발이 휘날리는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특별한 성화 봉송 주자들이 등장하자 시민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올림픽성화 봉송 역사상 처음으로 로봇이 주자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 테이프는 DRC 휴보(DRC-HUBO+)가 끊었다.
오준호 KAIST 교수를 필두로 한 '팀 KAIST'의 역작 휴보는 사람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휴보는 할 수 있는 게 많다.
춤도 추고 악수도 한다.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2015년에 거뒀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을 대신해 재난 현장을 복구하는 로봇기술 대회에서다.
미국 방위공동연구계획국(DARPA)이 주최한 세계 재난대응로봇 경진대회에서 휴보는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8개의 미션을 가장 이른 시간 안에 완벽하게 수행해 한국 로봇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다.

이날 성화봉송 주자로 나선 휴보는 오륜기 털 모자를 인간의 머리에 해당하는 부위에 쓰고 나타났다.
휴보는 자율주행 차량 운전석에 앉아 봉송 코스로 향했다.
휴보 곁엔 세계적인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박사가 자리했다.
로봇이 운전하는 차에 사람이 탄 모습이었다.
청중은 박수와 환호로 이들을 맞았다.

데니스 홍 박사로부터 성화를 넘겨받은 휴보는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몇 걸음 걸었다.
휴보의 성능을 시연하기 위해 장벽이 앞을 가로막았지만, 별것 아니라는 듯 이를 뚫어냈다.
통신이 끊기며 다소 주춤하기도 했으나, 휴보는 인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계획대로 성공했다.
그가 성화를 전달한 건 자신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준호 KAIST 교수다.
휴보의 움직임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오 교수는 로봇 아들로부터 불꽃을 넘겨받고서 달렸다.
몇십m 앞에는 더 우람한 녀석이 준비하고 있었다.

인간 탑승형 로봇 'FX-2'였다.
KAIST 휴보랩에서 레인보우 로보틱스와 함께 제작한 이 로봇은 2m를 훌쩍 넘는 키에 270㎏에 달하는 거구다.
사람이 직접 탄 채 조작하는 이 자이언트 이족보행 로봇은 이날 세상에 처음 공개됐다.
평창 성화봉송을 위해 특별히 제작됐다고 평창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측은 전했다.
하체는 전작인 FX-1의 프레임을 그대로 사용했다.
다만 FX-1은 실내에서만 움직일 수 있었으나, FX-2는 밖에서도 걸을 수 있다.
더 큰 변화는 상체에 있다.
팔이 없던 FX-1과는 달리 탑승자 조종에 따라 움직이는 데이터 암(data-arm)을 달았다.
인간과 거의 흡사한 동작을 구현할 수 있다.
손가락도 다섯 개가 달렸다.
탑승자가 조작하면 굽히거나 펼 수 있다.

이날 성화봉도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자연스럽게 옮겼다.
FX-2에는 주니어 소프트웨어 창작대회 우승팀 대표 이정재(14) 군이 타고 있었다.
이 군은 지난 리허설 때처럼 능숙하게 로봇 팔을 위아래로 조작했다.
이어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 인간 성화봉송 주자에게 불꽃을 넘겼다.
시민들은 휴보만큼이나 따뜻한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유튜브와 페이스북 생중계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네티즌도 함께 축하하는 모습이었다.
'압력밥솥 소리가 난다'라거나 '미국에 비하면 멀었다'는 자조 섞인 댓글도 눈에 띄었으나, 많은 이가 우리나라 로봇공학 성과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오준호 교수는 "두 다리로 사람을 태우고 두 팔로 움직일 수 있는 FX-2를 성공적으로 시연했다"며 "우리나라 로봇 개발 기술을 선보인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 만큼은 아니었으나, 국내 로봇공학의 현재와 미래를 살필 수 있는 특별한 성화 봉송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휴보와 FX-2는 짧은 거리였지만, 큰 발자취를 남겼다.
walde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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