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랍계 이란·터키, '팔레스타인 수호자' 자처…사우디에 공세

입력 2017-12-12 21:44  

비아랍계 이란·터키, '팔레스타인 수호자' 자처…사우디에 공세
'예루살렘 선언'으로 난처해진 사우디 몰아붙여
아랍 이슬람권 '큰형님' 사우디 위상 흔들기 시도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루살렘 선언'으로 미국의 맹방 사우디아라비아의 입장이 오히려 난처해졌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폭탄선언으로 중동 이슬람권의 여론이 급격하고 강력하게 반미·반이스라엘로 기울면서 사우디가 중간에 낀 신세가 된 탓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6일 이른바 '예루살렘 선언'을 하기 전까지 사우디가 이란을 압박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밀약'했다는 설이 유력하게 대두한 터였다.
그 틈을 타 이란과 터키는 사우디를 강하게 몰아붙이면서 아랍 이슬람권의 '큰형님'으로 군림한 사우디를 흔들고 있다.
이교도에 탄압받는 아랍 무슬림의 상징인 팔레스타인 문제를 둘러싸고 아랍계의 '큰형님' 사우디의 빈자리를 비아랍계 이슬람 국가인 이란과 터키가 채우는 묘한 상황이 됐다.
사우디는 미국과 협력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협상에 적극 개입, 이란에 다소 밀렸던 역내 주도권을 회복하고 '대이란 공동전선'을 구축한다는 전략을 짰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종교·종족적으로 민감한 예루살렘이라는 판도라 상자를 미국이 갑자기 열면서 사우디의 발걸음이 꼬였다.
팔레스타인 가지지구의 무장정파 하마스를 둘러싼 여론 역전이 대표적이다.
사우디는 올해 6월 카타르와 단교하면서 하마스를 중동을 불안케 하는 극단주의 조직으로 지목하면서 이에 대한 지원을 끊으라고 요구했다.
아델 알주바이르 사우디 외무장관은 단교 이틀 뒤 "카타르는 무슬림형제단과 하마스를 지원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이집트를 약화하고 있다"면서 지원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하마스는 압도적인 전력의 열세에도 이스라엘과 무력 충돌을 수없이 빚었다.
이집트에서 기원한 이슬람주의 정파 무슬림형제단 가운데 무력투쟁을 주장하는 강경파가 주도해 창설된 탓에 사우디 등 걸프 지역 군주정과 이집트는 이들과 거리를 뒀다.
이집트, 요르단 등 이스라엘과 국교가 수립된 아랍권 정부 역시 강경한 무력투쟁을 주장하는 하마스를 경계한다.
중동에서 카타르와 이란 정도가 하마스와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이슬람의 성지이기도 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손에 쥐여주면서 아랍권 전체에 분노가 끊어 올랐고 이스라엘과 직접 교전하는 하마스의 위상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아랍권에서 '점령자 이스라엘에 맞서는 아랍 무슬림의 수호자'로 변모한 하마스를 극단주의로 규정한 사우디의 주장이 그만큼 약화된 셈이다.
경쟁국인 이란과 터키는 사우디를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다..
알리 자파리 이란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은 9일 "트럼프의 결정은 일부 아랍국가,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와 물밑에서 합의, 조율을 거친 결과"라면서 "그들(사우디 등)은 이 문제를 몇 달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우디 정권은 새로운 미국의 범죄에 맞선 이슬람 국가의 입지를 좁히려고 시도하고 있다"면서 "사우디는 말로는 트럼프의 결정을 반대하면서 이스라엘, 미국과 짜고 알쿠드스(예루살렘)를 방어하려는 실질적인 움직임을 방해했다"고 비난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도 10일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잘못된 우정을 포기하면 이란과 좋은 사이가 될 수 있다"면서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밀약설을 겨냥했다.
11일엔 하마스 정치국 최고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와 통화했다는 사실을 이례적으로 공개하면서 '진정한 팔레스타인의 지원자'라는 이미지를 부각했다.
그러면서 이란, 사우디와 더불어 중동의 3대 맹주인 터키와 '예루살렘 수호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이란 외무부는 11일 브리핑에서 "(사우디가 주도한) 9일 아랍연맹 긴급회의에서 채택된 반이스라엘 성명은 '예상대로' 단호하지 못했다"면서 "그 성명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선언 이후 이란 곳곳에서는 아랍계 국가가 무색할 만큼 매일 반미·반이스라엘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도 11일 "예루살렘을 무슬림과 다른 종교 신자의 지하 감옥으로 만드는 자들은 그들의 손에서 피를 씻을 수 없을 것"이라면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는 결정으로 미국은 그들의 협력자가 됐다"고 비난했다.
전날엔 이스라엘을 '테러 국가', '침략국'으로 지목했다.
카타르 단교와 예루살렘 사태를 거치면서 중동의 3대 강국 가운데 이란과 터키의 관계는 더 긴밀해진 반면 사우디는 고립되는 양상이다.

hsk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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