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마르 대연정 깨지고 3년 안 돼 나치 집권…독일의 타협 주목

입력 2017-12-13 17:12  

바이마르 대연정 깨지고 3년 안 돼 나치 집권…독일의 타협 주목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최측근 페터 알트마이어 총리실장 겸 재무부 장관, 아르민 라셰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州) 총리와 늦은 밤 모여 와인을 한잔했다
모임을 마치고 다른 이들이 모두 떠난 뒤 자신이 당수로 있는 중도우파 기독민주당 주요 인사 중 가장 편안하게 여기는 측근이나 동료와 자리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엔 당시 한창이던 자유민주당, 녹색당과의 연정 협상 현황이 '안주'로 올랐다.
독일이 2030년까지 기후변화에 대응한 탄소 저감 목표를 달성하려면 저감 속도를 더 내야 한다는 녹색당의 주장이 화제가 됐다.
발전량 기준으로 도대체 얼마나 줄여야 한다는 거야!
보수 진영인 기민당과 자민당은 3∼5기가와트 발전량 감소를 감당할 수준으로 봤지만, 녹색당은 8∼10기가와트를 제시하는 상황이었다.
그 차이를 듣고서 메르켈이 나섰다.
"두어 기가와트 차이로 협상이 깨지도록 둘 순 없잖아."
그러곤, 생각 끝에 7기가와트를 중재안으로 내놓았다.
독일 최대 인구를 가진 당내 '큰 손' 라셰트 주 총리는 바로 반응하지 않은 채 일단 와인으로 목을 적셨다.
"그의 가슴엔 두 개의 심장이 쿵쾅거리는 듯했다." 지난달 27일 이 에피소드를 다룬 일간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은 이렇게 전했다.
명색이 주 총리이니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지역의 중공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전력 단가가 오를 수도, 기업 일자리가 날아갈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렇지만 그 탓에 연정을 깰 순 없으니 고통스러웠다.
FAZ는 메르켈이 그때, 1930년 3월 있었던 바이마르공화국의 대연정 붕괴를 떠올렸다고 썼다.


당시 집권 다수 사민당은 미국 대공황 파고에 휩쓸려 실업률이 치솟자 실업보험료를 올리려 했지만, 정책 이견을 빚었고, 결국 헤르만 뮐러 총리가 사퇴하는 것으로 대연정 수명을 끝냈다. 야당의 반대보다 당내 좌파와 노동계의 저항이 더 결정적이었던 것이 사민당으로선 더 뼈아픈 대목이었다.
3.5%이던 보험료율을 애초 4.0%로 올리려다 3.75%로 조정했지만, 그 인상 폭 0.25%포인트 때문에 당이 분열해 집권을 마감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악몽 같은 역사를 고려하면 그 문제는 오히려 작았다. 그로부터 3년이 채 안 돼, 1차 세계대전 전후 패전국 배상 부담에 대공황까지 겹쳐 독일 경제가 파탄 난 틈에 뚫고 나치가 집권하는 불행이 이어졌고, 그 기원의 한 중요한 계기가 이 대연정 종식이었다는 것이 진짜 문제였다.
1차 대전 이후 독일에 최초로 등장한 공화정인 바이마르공화국 시절이던 1928년 5월 나치당의 총선 득표율은 불과 2.6%였다. 하지만 대공황이 터지고 대연정이 무너진 뒤 치러진 1930년 9월 총선 때 나치당은 사민당 다음으로 높은 18.3% 지지율의 2당이 됐다. 이후 1932년 7월 마침내 37.3%를 얻어 1당에 오른 뒤 같은 해 11월 33.1%로 다수당을 유지하고는 아돌프 히틀러가 1933년 1월 총리를 꿰차기에 이른다.
더 큰 지지와 권력을 탐한 히틀러는 1933년 3월 다시 총선을 치렀고, 자신이 원한 과반에는 못 미쳤지만 43.9% 지지를 받아 종전 최대 정당이던 사민당을 18.3%의 초라한 2당으로 다시 한 번 전락시켰다. 그땐 밥 먹듯이 총선을 자주 했다.
메르켈 총리가 상기했다는 역사와 교훈은 바로 이런 것이다. 실제로 사민당 출신의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는 생전에 메르켈 총리에게 이 에피소드를 자주 얘기해 줬다고 FAZ는 소개했다. 메르켈 총리는 슈미트 전 총리와 당적이 다르지만, 함부르크 태생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다 그의 정치적 조언을 경청했다.
이 점에서 메르켈 총리는 두어 기가와트 차이로 협상을 파탄 낼 수 없다며 타협 의지를 보였던 것이지만 결국 자민당, 녹색당과의 연정 협상은 실패했고, 그는 사민당과의 새로운 연정 협상에 들어갔다. 이 협상에 임하는 그의 일성은 "세계가 우리가 행동할 수 있는지 기다린다"였다. 정부 구성의 책임성을 강조한 것으로 읽히지만 알쏭달쏭한 이 언급의 온전한 뜻은 좀 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전망이다.
un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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