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없는 미래' 저자 팀 던럽…"사라지는 일자리, 기본소득이 뒷받침해야"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인공지능(AI) 등 기술 발전에 따른 실업은 이 시대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다.
지난 3월 미국에선 "15년 이내로 미국 일자리의 38%를 로봇이 대체할 수 있다"는 컨설팅업체(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의 보고서가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한 당일 "앞으로 50∼100년간은 AI가 미국인의 일자리를 대신할 것이라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의 발언이 나와 논란이 됐다.
세계적인 석학 스티븐 호킹 박사와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AI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으나 인텔·나스닥을 이끄는 이들은 완전히 다른 견해를 내놓는다.
과연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을 것인지 아닌지에 논의가 집중되는 가운데 로봇은 결국 인간이 하는 일을 대체할 것이며, 이로 인해 "인류 역사상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시간이 온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어 눈길을 끈다.
기술 발달로 인간의 노동이 불필요해지는 '탈(脫) 노동' 시대를 준비해야 할 때라고 강조하는 호주의 정치철학 박사이자 칼럼니스트 팀 던럽을 지난 13일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미권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저서 '노동 없는 미래(Why the Future is Workless)'로 널리 알려진 던럽 박사는 서울문화재단 주최로 14일 열리는 '제9회 서울시 창작공간 국제심포지엄' 참석차 내한했다. AI가 그림도 그리고 작곡도 하는 시대에 예술가의 역할을 논의하는 자리다.
다음은 던럽 박사와의 일문일답.
-- 문재인 정부는 물론 전 세계의 많은 정부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내걸고 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시대 일자리는 쉽게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사람들은 종종 기술이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는 사실을 잊는 것 같다. 로봇이 사람의 일을 대신할 수 있다면, 왜 그렇게 하도록 두지 않는가. 생산성이 높아지면 노동자들은 지금 일하는 시간만큼 일하지 않아도 된다. 제품이 값싸지면 가처분 소득도 높아진다. 2015년 미국의 평균적 노동자가 1915년 노동자의 소득 수준을 누리고 싶다면 연간 17주만 일하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노동 시간을 줄이되, 지금과 비슷한 임금을 받도록 하는 것이 일자리를 더 만드는 것보다 낫다고 본다.
-- 저서 '노동 없는 미래'에선 노동을 기계에 넘겨주고 인간은 자유롭게 다른 활동을 하는 삶을 누려야 하며, 이를 위해 국가가 국민 모두에게 무조건 제공하는 보편적 기본소득(UBI·Universal Basic Income) 도입을 제안한다.
▲ 전 세계의 정부들이 꽤 오랫동안 기본소득을 두고 갑론을박할 것으로 본다. 호주, 한국은 물론 많은 문화권에서 '일'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이 점점 불안정해지는 데도 일자리를 갖는 것이 시민의 의무이며, 일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확인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지금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이 '존엄성'이라는 얘기를 꺼내기도 어려운 수준의 일자리를 갖고 있다. 기본소득은 일자리의 숫자는 물론 질이 점차 떨어지는 시대의 해법이 될 수 있다.
-- AI 시대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비교적 활발하게 이뤄지는 국가를 어디로 꼽나.
▲ 6개월 전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아무 데도 없다고 답했겠지만, 최근 전 여러 정부가 기본소득 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올해 핀란드에 이어 캐나다 온타리오주가 기본소득제 실험에 나섰다. 영국 정부는 자동화와 플랫폼 기술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 어떻게 더 공정하게 만들 것인지를 담은 산업정책을 내놨다.
-- 일자리 증발을 기술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 점이 인상 깊다.
▲ 사람들은 '기술 실업'을 두려워하고 있다. AI가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 뒤 뭘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한다. 조만간 일자리의 20%가 사라질 것이다. 10%라고 해도 매우 많은 숫자다.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호주의 경우 주요 양당이 기본소득제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정당의 움직임이 더디다면 노동조합이 나서서 이슈를 제기할 수 있다. 노동 시간 단축이 기본소득 도입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주 5일 근무를 4일로 줄이도록 요구하는 거다. 기계가 도와준다면 인간은 지금보다 훨씬 더 적은 시간을 일해도 된다. 앞으로 10년 안에 주 3일 근무까지 가능할 것으로 본다.
-- 우버 같은 애플리케이션 기업이 노동자의 급여와 근무 조건을 떨어뜨려 가격을 낮춘다고 비판해왔다. 이런 기업의 영업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얘긴가. 최근 서울시는 카풀 앱 '풀러스'가 법을 위반했다며 경찰 조사를 요청했다가 논란이 됐다.
▲ 정부가 애플리케이션 기업의 영업을 막는 것은 '질이 나쁜 산업(bad industry)'을 지원하는 꼴이다. 택시업계는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우버 같은 회사는 고객이 싼 가격에 더 나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예 영업을 못 하게 하기보다는 규제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호주의 경우 특정 면허를 소지하고, 안전 테스트(public safety test)를 통과한 이들에게만 우버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전과가 있는지도 확인한다. 영업 차량이 안전하다는 사실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우버 운전기사에 대한 낮은 대우 문제는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
-- 애플리케이션 기업의 노동자 처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 애플리케이션 기업이 만들어 내는 일자리의 가장 큰 장점은 '유연성'이다. 학비를 벌어야 하는 대학생이 레스토랑 웨이터로 취업한다고 가정해보자. 갑자기 과제가 생겨 일하러 나가지 않는다면 당장 해고될 수 있다. 하지만 우버 운전사로 일한다면 간단하다. 앱을 껐다가, 일할 수 있을 때 다시 켜면 된다. 기본소득을 준다면 유연성과 노동조건이 더 좋아질 것으로 본다. 일을 하든 안 하든 정기적 소득이 있다면 일자리 선택에 더 신중해지게 된다. 레스토랑 사장이 제시하는 임금과 조건이 나쁘다면 바로 거부할 수 있다. 지금은 대안이 없기 때문에 나쁜 조건이라도 잡아야 하는 이들이 많지 않나. 우버 운전기사의 평균 근무 기간은 4개월이다. 기본소득을 도입한다면 이 기간은 더욱 줄어들 것이고, 운전기사를 확보해야 하는 우버는 노동자 처우를 높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chopar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