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포대부터 돼지저금통까지…한파 녹이는 '얼굴 없는 천사들'

입력 2017-12-16 07:55  

쌀포대부터 돼지저금통까지…한파 녹이는 '얼굴 없는 천사들'
"더 어려운 이웃 위해" 작은 기부 줄이어…'기부 포비아' 무색
경산 통영 울산 전주 등 소중한 온정의 손길 세밑 추위 녹여



(전국종합=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제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작은 정성이 어려운 이웃에게 쓰이기를 바랍니다."
지난 12일 새벽 경북 경산 한 농촌마을 면사무소 현관에 20㎏들이 햅쌀 20포대가 놓여 있었다. 세밑 한파를 녹이는 온정이 면사무소를 가득 채웠다.
포대에는 "와촌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입니다. 추운 겨울, 불우한 이웃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작은 마음을 전합니다"라는 메모가 붙었다.
면사무소에 연말 쌀 포대가 놓인 것은 올해로 만 6년째다. 그때마다 같은 내용의 쪽지가 붙었고 기부자가 누군지를 확인할 수 있는 흔적은 없었다.
안개처럼 홀연히 사라진 기부자 뜻에 따라 경산시는 이 쌀을 골고루 나눠주기로 했다.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친 이튿날에는 경남 통영에서 훈훈한 소식이 전해졌다.
시청을 찾은 한 남성은 주민생활복지과 직원에게 현금 100만원을 건네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좋은 일에 사용해 달라"는 짤막한 한 마디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 남성의 마지막이었다.
울산에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돼지 저금통이 전달됐다.
지난달 18일 한 익명의 기부자가 북구 교육진흥재단에 "지난 40년 동안 저금통에 모은 동전을 전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재단 관계자들은 전달받은 저금통 200개를 은행으로 갖고 가 돈을 셌다. 안에는 꼬깃꼬깃 접힌 지폐와 손때 묻은 동전이 가득했다.
금액은 모두 5천130만150원. 오랜 시간 쌓인 누군가의 고운 마음이 차곡차곡 돼지 배를 부풀렸다.
기부자는 이름과 나이, 주소, 직업 등 개인정보가 일절 알려지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자신의 마음이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되기만을 원했다.


겨울 첫 문턱에 접어든 지난달 17일에는 익명의 독지가가 전북 전주 삼천3동 주민센터를 방문했다.
"양이 너무 적어 미안하다"며 양해를 구한 남성은 10㎏짜리 쌀 4포대와 저금통을 내려놨다.
직원들은 남성에게 신분을 물었지만, "1년 동안 모은 정성이니 좋을 일에 써달라. 적은 물품을 기부한다고 떠벌리는 게 민망하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남성이 전달한 따뜻한 마음은 홀몸노인과 한 부모 가정에 전달돼 온기를 더했다.
해마다 연말이면 우리 곁을 찾아오는 익명의 기부천사들은 이렇듯 전국 곳곳에서 따뜻한 베풂을 일깨우고 있다.
최근 최순실과 이영학 사건 등으로 '기부 포비아(공포증)'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나눔이 줄었지만, 이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어려운 이웃에게 온정을 전한다.
누군가 남몰래 실천한 작은 기부에 수혜자들은 혹한을 이기는 용기와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익명의 기부자를 통해 물품을 전달받은 전주시 한 시민은 "기부하는 사람들은 거창한 행사를 여는 게 대부분인데 이름을 밝히지 않고 돈과 쌀을 전달한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진다"며 "지금은 어려운 삶을 살고 있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jay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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