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15일 "재벌 문제의 해결 방법은 재벌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이를 실행하는 결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출입기자단 송년간담회에서 재벌개혁을 위해 재벌이 나아가야 할 길을 이렇게 간추리며 "변화의 끝이 아니라 변화의 시작을 보여달라"고 재벌들에게 촉구했다. 그는 "대저택(재벌)을 불태우지 않고 적절히 리노베이션(개·보수)할 것"이라며 "기업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답답해한다고 하지만, 그들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재벌개혁이) 불확실성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제민주화의 시작은 재벌개혁이지만 본령은 갑질 근절에 있다. 우리 사회를 평평하게 만드는 작업을 지속하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재벌기업들에 '알아서 개혁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위원장 취임 초기인 지난 6월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 경영인들과 만나 "기업 전략이 시장과 사회적 반응으로부터 지나치게 괴리돼서는 안 된다. 국민이 기업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도록 좀 더 세밀한 전략을 속도감 있게 진행해달라"면서 "재벌개혁을 위한 자발적인 모범사례를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11월 초에 열린 5대 그룹 전문 경영인들과 정책간담회에서도 재벌개혁을 위해 스스로 더욱 분발해 줄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정경유착 근절, 경제력 집중 완화, 불합리한 지배구조 개선, 일감 몰아주기로 대표되는 사익편취 및 불공정 거래관행 근절 등 국민이 인식하는 재벌 폐해를 줄이는 가시적 조치를 내놓으라는 요구로 해석됐다. 그는 기업들의 자발적 개혁 의지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이 남아있다며 "대기업집단 공익재단을 전수조사하고 지주회사 수익구조 실태를 점검하겠다"고도 했다.
지배구조 개선 등 전통적 재벌개혁도 물론 중요하지만, 국민이나 중소기업들이 재벌기업에 가장 바라는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심화하는 불공정 거래를 바로잡는 일일 것이다. 이는 복잡한 입법절차가 필요한 제도 개선과는 달리 재벌기업들이 마음만 먹으면 실행할 수 있고, 가시적 효과도 크다. 이날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김 위원장 초청 간담회에서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관계자들은 ▲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및 부당전속거래 근절 ▲ 기술탈취에 대한 공정위 직권조사 등을 우선 건의했다고 한다. 이것만 봐도 그들에게 무엇이 가장 절박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재벌기업들이 과거 산업화 과정에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국민의 희생을 토대로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도 성장의 결과가 우월적 지위를 앞세운 재벌 대기업으로 더 많이 흘러들어가는 구조가 고쳐지지 않아 사회적 양극화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중소기업이 지금보다는 '평평한 운동장'에서 대등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은 힘 있는 대기업들의 몫이다. 이런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실행에 나서 가시적 조치들을 내놓아야 한다. 김 위원장이 이들에게 '실행이 중요하다'고 주문한 이유다. 공정위도 법령 개정 등이 필요한 장기 과제들은 차근차근 진행하더라도 당장 피부에 와 닿는 절박한 것부터 개선을 유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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