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그맘' '로봇이 아니야' '너도 인간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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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로봇을 내세운 드라마가 이어진다. 그러나 아직 진짜 로봇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로봇이 있어야 할 자리에 인간들의 코믹한 소동극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형식은 제작비가 부족한 한국 드라마가 로봇을 다루는 한계를 노출한다. 지금까지 등장한 로봇 드라마는 팔할 이상을 배우의 '로봇 흉내내는 연기'에 의존했고, 최소한의 CG로 잠시 눈속임을 할 뿐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현란한 CG로 사이보그를 구현해온 할리우드 영화에 눈높이를 맞춘 시청자에게는 코웃음을 불러낼 뿐이다. 로봇 드라마지만 슬랩스틱 코미디 드라마라 분류하는 게 맞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한국 드라마가 소재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발했다는 의의가 있다. 또 내용에 조금만 더 깊이를 부여한다면 각박한 현실을 풍자하고 휴머니즘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점수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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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별→채수빈→서강준의 1인2역
한국형 로봇 드라마는 배우의 1인2역이 시작점이자 끝이다. 지난 1일 끝난 MBC TV 금요 드라마 '보그맘'과 6일 시작한 MBC TV 수목극 '로봇이 아니야', 지난달 사전제작으로 촬영을 마치고 내년 상반기 방송될 KBS 2TV '너도 인간이니'는 모두 주인공과 닮은 휴머노이드를 등장시킨다. 이로 인해 주인공 배우는 인간과 로봇의 1인2역을 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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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맘'의 박한별과 '로봇이 아니야'의 채수빈을 비교하면 현재까지는 박한별의 연기가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는 '보그맘'이 출산하다 죽은 여성 이미소를 닮은 휴머노이드 이야기라 박한별이 인간 이미소 연기를 하는 부분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간혹 회상신을 통해 이미소가 등장하긴 했지만, 박한별은 전체 분량의 90% 이상을 '사이보그 맘'의 약자인 '보그맘'으로 등장해 로봇인 척했다.
게다가 '보그맘'은 예능국에서 만든 '예능 드라마'임을 내세운 시트콤 형식이라 처음부터 과장된 코믹 연기가 '그러려니' 하고 용인되는 게 있었다. 박한별의 '로봇을 흉내 낸 로봇 연기'는 그래서 독특한 매력을 전해줬다.
반면 '로봇이 아니야'는 영 혼란스럽다. 채수빈이 무려 1인3역을 오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조지아와 조지아를 빼닮은 휴머노이드 아지3, 그리고 아지3가 고장나자 아지3인 척하는 조지아까지 3가지 역할이 극에 혼재돼 있다. 베테랑 연기자도 해내기 어려운 임무가 신인 여배우에게 주어진 탓에 요란한 코믹 소동극으로 포장을 해도 1인3역을 오가는 채수빈의 어깨가 너무 무겁다.
'로봇이 아니야'의 외피는 얼토당토않은 코미디지만 '보그맘'보다는 한층 드라마가 강화된 탓에 채수빈이 박한별과 똑같은 수준으로 로봇 흉내를 내도 점수를 얻기가 불리한 상황이다. 심지어 수시로 1인3역을 오가는 탓에 초반부터 세가지 역할의 경계 자체가 모호해지고 말았다.
'너도 인간이니'에서는 서강준이 인간과 로봇을 오가게 된다. 서강준 역시 아직 연기적으로는 무르익지 못한 상태라 그의 1인2역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가 드라마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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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머노이드가 나오는 이유는 공감
세 드라마 모두 로봇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는 설득력이 있다.
'보그맘'은 천재 로봇 과학자가 사망한 아내 이미소와 똑 닮은 휴머노이드를 만들어내면서 시작한다. 이 보그맘이 집안에만 머물지 않고 아들의 유치원에 학부모로도 참여하면서 실제 엄마이자 아내처럼 행동하는 이야기다. 사별한 아내와 엄마를 로봇으로라도 다시 만나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은 그 마음은 보편적인 공감대를 얻는다.
'로봇이 아니야'는 남자 주인공 김민규가 '인간 알레르기'라는 가상의 희귀병을 앓는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인간과의 작은 접촉에도 피부가 심하게 부어오르고 흉악한 두드러기가 돋는 데다 호흡곤란까지 오는 탓에 주인공은 인간관계에서 철벽을 쌓아놓고 산다.
그런 김민규가 알약이 목에 걸려 죽을 뻔한 순간, 로봇 아지3가 그의 등을 때려 약을 뱉어내게 해 살린 것을 계기로 김민규가 아지3를 자신의 비서 겸 도우미로 '고용'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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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인간이니'는 재벌 3세 남신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지자 그의 엄마가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경영 세습 문제 등에서 멀쩡한 아들이 필요했던 엄마의 결정으로 휴머노이드가 탄생하는 것이다.
세 경우 모두 휴머노이드 등장의 배경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세 드라마 모두 '볼거리'를 주겠다는 SF 장르가 아니라는 점에서 결국은 스토리의 완성도로, 감성적 접근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 우리가 원하는 로봇은?
'보그맘'은 입력된 데이터가 아닌 감정은 없는 줄 알았던 보그맘이 자신을 개발한 과학자에게 사랑을 느끼는 '버그'가 일어나고, 과학자 역시 보그맘에게 사랑을 느끼는 코믹 판타지를 보여줬다. 드라마는 보그맘을 죽은 아내의 '대용 로봇'으로 생각했던 과학자가 보그맘을 진짜 가족으로 받아들이면서 끝났다.
'로봇이 아니야'는 김민규가 로봇이라고 믿고 있는 아지3가 사실은 아지3를 흉내 내는 인간 조지아라는 엄청난 트릭을 무기로 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드라마는 사실 로봇 드라마도 아닌 셈인데, 김민규가 인간 알레르기를 결국은 인간을 통해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오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을 조명한다. '보그맘'보다는 한단계 진보한 주제로, 인간과 로봇의 차이를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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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인간이니'는 남신을 본뜬 로봇에 제작진이 '감성로봇 사기꾼 남신-Ⅲ'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직 방송이 안됐지만, 이 이름만으로도 전통 로봇 드라마와는 다른 길을 걸을 것임을 예고한다.
한 드라마 제작사 PD는 19일 "로봇이 미래 사회의 화두가 되면서 드라마에서도 로봇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초기 단계 수준"이라며 "코믹한 에피소드나 우스꽝스러운 소동극이 주를 이루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철학적인 문제를 다루거나 멋진 CG를 보여주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덧붙였다.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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