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 업무 대신하던 日기업 관리직 자살 산재인정

입력 2017-12-20 07:00  

부하 업무 대신하던 日기업 관리직 자살 산재인정
회사가 '직원 잔업시간 줄여라'지시… 관리직 '과로사' 인정 사례
직원 업무 줄여 수당도 없는 '관리직에 전가' 개혁방식 재검토 필요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일본 정부와 업계가 근로자들의 과로사를 막기 위해 시간외 근무 단축 등 일하는 방식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부하 직원들의 초과근무를 줄이기 위해 자신이 업무를 대신하다 우울증에 걸려 자살한 관리직 간부 사원이 산업재해 판정을 받은 사례가 나왔다.
이를 계기로 일반 사원들의 시간외 근무가 줄어들면 노동시간 제한이 적용되지 않아 시간외 수당도 받지 못하는 관리직 간부들의 업무가 늘어나는 일본 기업의 현행 근로방식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9일 NHK에 따르면 지바(千葉) 노동기준감독 당국은 혼다 자동차의 자회사 '혼다카스 지바(千葉)' 소속의 자동차 판매점 점장으로 일하다 우울증을 앓은 끝에 자살한 당시 48세 남성에 대해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이 남성은 재작년 3월 새로 문을 연 지바 시내 판매점 점장으로 취임했다. 점장은 부하들의 시간외 근무를 줄이기 위해 남은 업무를 자신이 집으로 들고 가 처리했다.
많은 달에는 한 달에 시간외 근무시간이 87시간 이상이었다. 이후 우울증에 걸려 출근할 수 없게 됐고 회사로부터 해고통보를 받자 작년 12월 자택에서 자살했다. 근로감독 당국은 노동시간 증가를 우울증의 원인으로 인정하고 지난 6월 산업재해 판정을 내렸다.
유족 대리인인 이토 오사부로 변호사는 "점장은 종업원의 시간외 근무를 줄이라는 회사의 지시를 받고 업무를 자신이 대신 했다"고 지적하고 "회사 측은 관리직에 대해서도 과도한 노동을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살한 남성은 20년 이상 자동차 판매회사에서 일했다. 유족들에 따르면 3년 전에는 실적 우수사원으로 평가돼 모기업인 혼다에서 표창도 받았다. 그러나 2년 전 새 점포의 점장이 되면서 점포 오픈 준비에 쫓겨 빠를 때는 새벽 6시께 출근해 밤 12시 넘어 다음날 돌아오는 날도 있었다고 한다. 집에 온 후에도 자기 방에서 PC를 켜놓고 일하는 날이 많았다. 유족은 "상사로부터 직원의 시간외 근무를 줄이라는 지시를 받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점장이 된 지 3개월 후인 재작년 6월 집을 나간 후 행방을 알 수 없게 됐다. 2개월 후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에게 "일에 쫓겨 잠을 못 자겠다.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어 죽으려고 했다"고 말하는 등 이상행동을 보여 우울증으로 진단됐다. 이후 회사로부터 무단결근했다는 이유로 해고통보를 받고 복직청원을 하던 중 작년 12월 20일 자택에서 자살했다. 유족은 아내와 자녀 3명이다.
아내는 "남편이 자살한 날부터 시간이 멈춘 느낌"이라며 회사에 대해 "20여 년 성실하게 근무한 사원이 죽었다는 걸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 노동기준법상 사원을 관리·감독하는 '관리직'에게는 노동시간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시간외 수당이라는 개념도 없다. 관리직은 경영방침 결정에 참가하고 종업원의 노무관리로 채용이나 근무를 평가하는 권한을 갖는 것으로 돼 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경영상의 판단과 대응이 요구되기 때문에 노동시간 제한을 받지 않으며 기업이 시간외 수당을 지불할 필요도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업이 일하는 방식 개혁을 추진하면서 사원들의 업무가 줄어든 만큼 노동시간에 제한을 받지 않는 관리직의 업무가 늘어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노동문제에 밝은 니혼소겐(日本??)의 야마다 히사시(山田久) 주임연구원은 "관리직은 원래 이런저런 관리업무나 감독으로 바쁜데도 지금은 일하는 방식 개혁으로 현장이 돌아가지 않게 된 분량만큼의 업무를 관리직이 떠맡는 구조. 기업은 단순히 사원의 시간외 근무를 줄일 게 아니라 회사 전체의 업무량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업이 일하는 방식 개혁을 추진하자 관리직의 부담이 늘었음을 보여주는 조사결과도 있다.
노무관리 컨설팅 업무를 하는 비영리(npo) 법인이 올 8월 기업의 부장과 과장 등 전국 1천여 명의 관리직을 대상으로 인터넷 조사를 한 결과 전체의 42%가 3년 전보다 업무량이 증가했다고 대답했다. 또 90% 정도가 일하는 방식 개혁을 추진하면서 기업 측의 아무런 지원이 없거나 부족하다고 답변했다. 이들은 원하는 회사 측 지원으로 절반 정도가 "업무량 감축"을 꼽았다.
사이타마(埼玉)현에 있는 한 자동차부품 메이커의 경우 2년 전부터 120여 명인 종업원의 근로 방식 개혁을 추진, 직원들은 되도록 정시에 일을 마치도록 독려하고 있다. 그 결과 종업원의 시간외 근무는 20% 이상 감소했지만, 관리직의 시간외 근무는 거꾸로 늘었다.
품질관리 담당 부서의 관리직인 다지마 에이처 과장은 부하들이 다하지 못한 일을 자신이 끌어안는 바람에 시간외 근무가 1개월당 20시간 정도 증가했다고 한다. 그는 "부하들을 정시에 퇴근시키면 아무래도 업무가 남게 된다. 특별히 좋아서 시간외 근무를 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안하면 업무가 정체되고 만다"고 털어놓았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회사 측은 올해 종업원 수를 늘렸으며 앞으로 쓸데없는 업무를 없애거나 효율화해 관리직의 부담을 줄이기로 했다.
야나기사와 도오히코 사장은 "우선 사원의 시간외 근무시간을 줄이는 데서부터 시작한 게 관리직에게 부담을 떠넘기게 된 게 사실"이라면서 "모든 사원의 시간외 근무가 줄지 않으면 일하는 방식 개혁이라고 할 수 없는 만큼 어려운 문제지만 회사 전체 치원에서대책을 마련해 보겠다"고 말했다.
lhy5018@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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