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마 정권 공적 자정 기능 마비, '마피아 인질국' 변모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남아프리카공화국 집권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를 이끌 새 지도자로 시릴 라마포사 현 부통령(65)이 선출됨으로써 걷잡을 수 없는 위기로 치닫던 남아공 사태에 한 가닥 서광이 비치고 있다.
남아공은 현 ANC 대표인 제이컵 주마 대통령 체제에서 만연한 정경유착과 부패 속에 사실상 마피아국가로 타락했다는 혹평을 받고 있지만 많은 전문가와 투자자들은 그래도 라마포사의 ANC 대표 선출로 남아공의 장래에 한 가닥 희망을 품어보게 됐다고 가느다란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라마포사는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과거 백인 정권에 대항에 싸웠고 넬슨 만델라의 최측근으로 차기 지도자로 유력시됐으나 타보 음베키에 패한 후 정계를 떠나 기업인으로 성공을 거둔 케이스.
따라서 투쟁경력과 함께 만연한 부패 서클과 고리가 없는 정치인으로 고질적인 부패 구조 청산에 적임자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라마포사 신임대표는 개인적인 자질 면에서는 개혁의 적합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으나 지난 수십 년간 부패 구조가 남아공 사회 전반에 깊숙이 누적된 상황에서 전문가들 사이에는 라마포사가 단기간 내에 이를 해소하기는 역부족이라는 비관적인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18일(현지시각) 진단했다.
따라서 어쩌면 라마포사가 불운하게도 다음 총선에서 남아공 민주화 이래 처음으로 선거에서 패하는 ANC 지도자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특히 사실상 국가가 정권과 결탁한 업자들에 의해 인질로 잡힌 상태에서 공권력과 언론 등의 자정 기능이 사실상 마비상태에 빠져 라마포사의 선출에도 불구하고 남아공이 당분간은 계속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 주마 대통령은 국가 주요 사업을 뇌물 규모에 비례해 '입찰'에 부쳐왔다. 올해 들어 부패와 뇌물 뉴스가 하루가 멀다고 남아공 언론을 도배해왔다.
인도 출신의 사업가인 굽타가문과 주마 대통령과의 유착이 대표적인 사레이며 이 밖에도 수많은 업자가 주마 대통령을 둘러싸고 뇌물을 미끼로 이권 쟁탈전을 벌여왔다.
이들 업자는 주요 각료들의 임면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가 하면 페이퍼 컴퍼니를 앞세워 수십억 랜드에 달하는 자금을 국영기업으로부터 빼내기도 했다.
최근 폭로에 따르면 굽타가(家) 외에, 주마가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도 일정 기간 그에게 '월급'을 지불해온 사업가 로이 무들리와 대규모 불법 관급계약에 연루된 혐의를 받는 국제컨설팅그룹 매킨지도 유착 기업으로 지목되고 있다.
주마 체제에서 사법 집행당국은 그 기능을 상실했고 정보기구는 ANC 파벌 투쟁의 점유물이 됐으며, 언론과 비정부기구(NGO)의 정부 비판기능도 갈수록 무디어져 사회 전반이 이전 백인 정권의 인종차별시대 권위주의 체제와 흡사해졌다.
넬슨 만델라로 대표되는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성공적인 모범국이 조폭식 마피아 국으로 변모하고 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집권당인 ANC는 전혀 자정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ANC 지도부인 전국집행위원회가 주마 대통령을 견제하는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주마 대통령의 전횡을 견제하고 나선 것은 독립성을 견지해 온 법원이었다. ANC 지도부 상당수가 주마 대통령 및 당 대표로부터 혜택을 받아온 만큼 주마가 실각할 경우 국가 자산을 '약탈'해온 그간의 관행이 종식될 것을 우려한 때문이었다.
따라서 신임 라마포사 대표가 당면한 최대 과제는 이미 부패 구조에 깊숙이 물들어 주마 대통령의 부패 정권에 사실상 공범 역할을 해온 집권당 ANC를 쇄신하는 것이다.
18개월밖에 남지 않은 다음 총선에서 패배하지 않으려면 대폭의 고강도 당내 쇄신으로 국민의 신임을 회복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으나 전망은 비관적이다.라마포사의 쇄신 과정에서 ANC 특유의 집단지도체제도 걸림돌이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ANC는 1994년 민주화 이후 개인 지도자의 역할보다는 집단 지도체제에 집착해왔으며 이로 인해 지도자 개인의 책임을 묻는데 모호한 태도를 보여왔다.
부패가 만연한 상황에서도 ANC 내에서 주마 대통령의 책임을 제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라마포사 대표가 향후 ANC 내에서 주마의 잔재를 일소하는데 어려움이 예상되는 한 이유이다.
부진한 국내 경제도 관건이다. 경제성장은 1% 미만에 그치고 있으며 실업률은 30%에 이르고 있다. 또 빈부차는 전 세계적으로 최악의 국가 가운데 하나이다.
당연히 라마포사가 당면한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는 빈부차 개선이다. 백인정권 철폐에 따른 민주화로 정치적 자유는 얻었지만 경제적 상황 개선은 이뤄내지 못했다.
오히려 흑인 정권 등장은 소수 서클의 흑인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갔고 라마포사 신임대표 역시 이러한 수혜층의 일원이었다.
라마포사가 신임 대표로 선출됐지만 향후 남은 문제는 현 주마 대통령이 ANC 대표에서 물러났음에도 오는 2019년까지 대통령직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즉각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이 가중하고 있지만 만약 주마가 대통령직을 고수할 경우 정부와 당의 이원체제가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당연히 주마 체제의 부패를 청산하는 작업도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번 신임대표 선거에서 라마포사가 근소한 차이로 승리한 점을 고려할 때 ANC 내 친(親)주마 세력이 건재함이 드러나고 있으며, 주마에 투자한 굽타가 등 업자들도 마지막 순간까지 이익을 챙기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도 따라서 라마포사 신임 대표는 국내 사법당국이 부패를 청산하도록 독려하고 주마 일당을 넘어 집권 ANC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집단으로 부패 청산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임 라마포사 체제가 얼마나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반부패 작업을 추진하느냐가 향후 국정 개혁과 대외 신임 회복의 관건이 될 것으로 FT는 전망했다.
yj378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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