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지법 "진술 증거능력 없고, 발언 내용도 국가 존립 위협 수준 아냐"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1980년 북한 경비정에 의한 '제2태창호' 납북 사건과 관련해 강압 수사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제주의 행자승이 35년 만에 억울함을 풀고 편히 잠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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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법 형사3단독 신재환 부장판사는 유모(1996년 사망)씨의 유족이 청구한 국가보안법 재심 사건에서 유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19일 밝혔다.
1981년 41세 당시 자신의 형이 주지승으로 있는 제주시 애월읍 한 절에서 행자승으로 일하던 유씨는 그해 11월과 이듬해 1월 제2태창호 선원 J씨를 만나 북한과 그 구성원을 찬양·고무하거나 북한의 통일 방안에 동조하는 발언을 한 혐의로 이듬해 기소돼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아 만기 출소했다.
당시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유씨는 J씨와의 대화 과정에서 북한의 발전상에 대해 우호적으로 평가하고, 광주민중항쟁과 국내 언론 통제 등 국내 상황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한 것으로 돼 있다.
이에 대해 신 부장판사는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내용이라기보다는 국내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주관적으로 피력한 것이고, 그 내용도 상당 부분 사실에 기초한 것이어서 반국가단체에 대한 찬양·고무 발언이라고 볼 수 없다"고 봤다.
이어 "북한의 발전상과 북한에 대한 우호적 발언 내용은 국내 정치 및 경제 상황에 대한 비판을 위해 대조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주된 취지로 보인다"며 "이러한 발언이 대한민국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발언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또 신 부장판사는 당시 경찰과 검찰이 불법구금 상태에서 유씨의 자백을 강요해 조서를 만들었다며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이기에 증거능력이 없다고 봤다.
신 부장판사는 "유씨가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발언을 한 사실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표현과 사상의 자유 등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는 우리 사회는 다양한 주장과 사상 등을 수용·비판·여과해내는 사회체제의 건전성과 성숙성을 확보하고 있다"며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ji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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