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훈련 연기' 카드 꺼내든 文대통령…북미 양쪽에 '공' 던져

입력 2017-12-20 00:37  

'한미훈련 연기' 카드 꺼내든 文대통령…북미 양쪽에 '공' 던져
'한미훈련 연기-北 도발중단' 쌍중단식 접근…美도 "검토중"
'평화올림픽' 안전개최가 명분…北호응 땐 정세변화 돌파구
北에 '평창 참가' 유화제스처 의미도…北 태도가 결정적 변수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김승욱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마침내 한미 연합군사훈련 연기 카드를 꺼내들었다.
19일 미국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내년 초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때까지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확인하고 이를 미국 정부에 제안했음을 공개한 것이다.
이는 북한의 거듭된 도발로 극도로 긴장된 한반도 정세를 이완하고 '평화올림픽'을 치를 수 있는 안보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전략적 승부수라고 볼 수 있다.
만일 북한이 이에 호응해 추가도발을 유예하고 나아가 북한 선수단을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시킨다면 한반도 정세의 흐름이 대화국면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한미 군사훈련의 연기를 미국 측에 제안한 것은 평창동계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치르겠다는 큰 명분에 터잡고 있다.
지난달 유엔 총회에서 평창동계올림픽 휴전결의가 채택됐듯이 올림픽의 안전 개최를 위해 북한을 자극하고 군사적 긴장을 유발할 수 있는 한미군사훈련을 올림픽 이후로 연기하자는 취지다.
통상 3월에 열리는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훈련은 평창동계올림픽 기간(2월 9∼25일)과는 겹치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패럴림픽(3월 9∼18일) 기간과는 겹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아이디어 차원에서 한미 연합군사훈련 연기가 거론된 적은 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지난 9월 독일 아데나워재단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내년 3∼4월 실시되는 한미 연합훈련의 중단 또는 축소를 논의해 볼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미국에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한미연합훈련의 연기를 요청했다고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같은 제안은 명분상으로나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시나리오라는 관측이 나온다. 연례훈련의 파트너 국가인 미국은 자국 선수단이 참여하는 행사라는 점에서 한반도 긴장완화가 긴요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은 "이미 나는 미국 측에 그런 제안을 했고 미국 측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으로서도 한미 군사훈련이 연기된다면 이를 명분으로 올림픽기간 국제사회의 비난을 살 우려가 높은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주목할 점은 이 같은 카드가 단순히 올림픽 안전개최 차원을 넘어 한반도 정세 전환의 돌파구서의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만일 한미 양국이 군사훈련을 중단하고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한다면, 중국이 중재안으로 제안했던 쌍중단(雙中斷)론과 유사한 그림이 만들어진다. 쌍중단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동시 중단을 의미한다.
이 경우 자연스럽게 한반도 정세 전반이 이완되면서 북미가 대화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북한이 평창올림픽 기간까지 핵·미사일 도발을 동결한다면 이를 직접 대화를 위한 신호로 간주하고 적극적 관여정책을 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일찌감치 '쌍중단' 방식의 대북접근을 진행할 수 있음을 우회적으로 내비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달 9일 방영된 싱가포르 채널뉴스아시아(CN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온다면 1단계로 핵 동결을 위해서, 다음 단계로는 북핵의 완전한 폐기를 위해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상응한 조치를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제안은 북한에게 평창올림픽 참가를 유도하기 위한 명분을 제공하려는 유화 제스처의 의미도 갖는다.
평창올림픽 기간까지 북한이 도발을 자제하고 한미가 군사훈련을 연기하기로 할 경우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가능성은 한층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 전용 고속열차 안에서 가진 언론사 체육부장 간담회에서 "과거의 사례를 보면 북한이 참가하더라도 확약하는 것은 거의 마지막 순간이 될 것이라고 본다"며 "그때까지 계속 설득하고 권유할 계획이다. 정부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의 쌍중단론이 받아들여진다면 중국은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설득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북한이 올림픽에 참가할 경우 북미관계는 물론 남북관계 개선에 있어서도 중요한 돌파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이 같은 한미군사훈련 연기 검토가 과연 미국과의 정교한 사전 조율을 거쳐 나왔는지는 미지수다. 자칫 한미 군사훈련 연기를 놓고 동맹간에 다른 목소리가 나오거나 엇박자 논란이 야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북한이 여전히 핵보유국 지위를 강조하며 추가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온전하고 있는 것이 최대 문제다. 이 경우 문 대통령의 전략적 승부수가 무위로 돌아가고, 한반도 전체 정세의 흐름이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 대통령이 이날 인터뷰에서 "이 모든 상황이 가능할 것인지는 북한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있다"며 "오로지 북한에 달려 있는 문제라고 본다"고 강조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kind3@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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