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을 위한 행진곡 9년 만의 제창…역대 최대 규모 기념식
국방부 특조위 출범·암매장 의심지 발굴조사…진상규명 박차
5월 단체 "정부 차원 진상규명 절실, 특별법 마련해야"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올해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정부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9년 만에 부활했다.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 발족, 행방불명자 암매장 의심지 발굴 등 범사회적 진상규명 움직임도 일었다.
5월 단체는 일련의 흐름이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져 '5·18 미완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님을 위한 행진곡 9년 만의 제창
5·18 정부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방식을 두고 이명박 정부 2년차인 2009년부터 전에 없던 갈등이 시작됐다.
2008년까지는 참석자 모두가 제창 방식으로 함께 불렀지만, 일부 보수 진영 반발에 2009년 기념식부터 공연단 합창 등으로 대체됐다.
정부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방식에 대한 논의는 광주항쟁 가치를 정립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5·18을 상징하는 노래인 님을 위한 행진곡은 1981년 소설가 황석영 씨의 광주 북구 운암동 자택에서 탄생했다.
황석영 씨 집에 모인 10여 명의 문인은 5·18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가 숨진 윤상원 열사의 영혼 결혼식을 주제로 노래극을 만들었고, 극의 마무리를 맺는 노래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지었다.
노래는 5·18 모든 희생자를 '님'으로 지칭했다.
백기완 선생의 시 '묏비나리'를 개작해 당시 전남대 학생이었던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이 곡을 완성했다.
일부 보수 진영은 황석영 씨 북한 방문 이력을 두고 노래가 지칭하는 '님'과 '새날'이 북한 김일성과 사회주의혁명을 뜻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제창을 둘러싼 논란은 보수와 진보 진영 간 이념 갈등으로 번져 해마다 5월이면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 시절부터 "대통령 자격으로 5·18 기념식에 참석해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겠다"고 공언했다. 역대 최대 규모로 거행한 올해 기념식에서 약속을 지켰다.
1980년 5월 18일 태어난 5월 유가족을 감싸 안은 문재인 대통령과 가수 전인권 씨가 부른 '상록수' 등 감동이 이어졌던 5·18 기념식은 영화 '택시운전사' 흥행과 함께 관심과 추모의 신드롬(증후군·특징적 현상)을 일으켰다.
5월 단체는 정권이 바뀌어도 제창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반복되지 않도록 '님을 위한 행진곡' 5·18 공식기념곡 지정과 정부기념식 제창 법제화를 정치권에 요구하고 있다.
◇ 새로운 진상규명 움직임
5·18 진상규명을 향한 새로운 움직임이 올해는 연초부터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항쟁 역사현장인 광주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 최상층에서 헬기사격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탄흔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전일빌딩은 1980년 당시 주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탄흔은 37년간 빈방에 남겨져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다.
전일빌딩 헬기사격 추정 탄흔은 건물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는 광주시 의뢰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찾아냈다.
국과수는 1월 12일 광주시에 전달한 감정 보고서에서 "가능성이 매우 크고 유력하게 추정된다"며 정부기관 최초로 5·18 당시 헬기사격 의혹을 인정했다.
계엄군이 5·18 당시 하늘과 땅에서 동시다발적인 실탄사격을 감행한 상황을 입증하면 '자위권 발동 차원에서 발포할 수밖에 없었다'는 신군부 측 주장이 무너진다.
다만, 국과수는 가능성만을 제시했다.
광주시와 5·18단체 요청으로 3월 28일 전일빌딩에서 추가 현장조사를 벌였으나 탄환 등 후속 증거 발굴은 한계에 부딪혔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대선 국면에서 각 정당 후보들은 광주를 방문하면 전일빌딩 탄흔 보존 현장에 들러 정부 차원 진상규명을 다짐했다.
이후 언론보도를 통해 광주 폭격을 위한 전투기 대기 의혹까지 드러나자 대통령 지시로 9월 11일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진상규명에 착수했다.
국방부 특조위는 헬기사격이나 전투기 대기 의혹뿐만 아니라 모든 5·18 관련 미해결 과제의 진상규명을 위해 60만쪽 상당 군 자료를 확보, 내년 2월 10일까지 활동 기간을 연장했다.
미국에서는 중앙정보국(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이 기밀 해제한 정보문건과 주한미국대사관이 보관해온 5·18 관련 기록물이 한국 시각으로 1월 19일 인터넷상에서 공개됐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국가정보위원회(NIC) 등이 작성한 미 정부 기록물에서는 '5·18 배후에 북한군이 있다'는 신군부 및 일부 극우 세력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이 주로 확인됐다.
◇ "정부 차원 진상규명 절실…특별법 마련해야"
5·18 최대 미해결 과제는 발포명령자 규명과 행방불명자 소재 확인이다.
이 가운데 항쟁 다시 사라진 사람들의 행방을 찾는 작업은 암매장 의심지역을 발굴 조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
5·18기념재단과 5월 3단체(유족회·구속자회·구속부상자외)는 올해 1995년 5월 29일자 서울지방검찰청 '12·12 및 5·18 사건' 조사자료를 통해 5·18 암매장 관련 새로운 정보를 입수했다.
1980년 5월 당시 3공수 본부대대 소령 계급 지휘관으로 광주에 투입된 김모씨는 '담장에서 3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부하 5∼6명을 데리고 직접 시신 12구를 매장했다'고 검찰에 진술하며 광주교도소 일원을 그린 약도를 남겼다.
재단 등 5·18단체는 검찰 수사기록과 첨부된 약도 등을 토대로 지난달 대한문화재연구원과 문화재 출토 방식으로 옛 광주교도소 발굴조사에 착수했다.
광주교도소는 2015년 10월 문흥동에서 북구 삼각동으로 이전했는데 보안·수용 시설이라는 특성상 지난 37년간 암매장 발굴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1980년 5월 현장이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됐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와 달리 옛 교도소 암매장 의심지에서는 배관줄기와 쓰레기 등 과거 땅을 파낸 뒤 다시 메운 흔적만 잇따라 드러났다.
발굴조사는 옛 교도소뿐만 아니라 암매장 관련 제보가 이어졌던 전남 화순 너릿재 일원으로 확대됐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5·18단체는 옛 교도소 암매장 약도를 작성한 김모씨를 발굴현장으로 소환할 법적 구속력이 없어 의심지역 주변으로 작업반경을 넓혀 조사를 지속하는 중이다.
단체는 조사권과 수사권을 보장하는 5·18 특별법이 제정돼 정부 차원에서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회에는 정부 위원회 설치와 보고서 채택 등 포괄적인 5·18 진상규명 내용을 담은 4건의 특별법이 계류 중이다. 담당 상임위원회에서 이달 처리가 무산됐다.
21일 김양래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항쟁 후 37년이 흘렀지만 진상규명은커녕 역사 왜곡 시도조차 뿌리 뽑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불필요한 국론 낭비를 줄이고 지금까지 가족 생사조차 확인 못 한 시민을 위해서라도 특별법이 하루빨리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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