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시 한글대학 운영으로 노인 1천600여명 한글 공부
(논산=연합뉴스) 한종구 기자 =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아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지방자치단체의 도움으로 한글을 배우고 멋진 학사모까지 썼다.
은행에서 직접 이름을 써서 돈을 찾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읍내에서 장을 본 뒤 집으로 가는 버스도 마음대로 탈 수 있다.
1년 동안 지자체가 운영한 한글대학에 나가 교사가 시키는 대로 했더니 한글을 저절로 깨우치게 됐다.
충남 논산시는 1일 강경읍을 시작으로 19일 은진면까지 마을로 찾아가는 어르신 한글대학 수료식을 마무리했다고 20일 밝혔다.
논산시는 따뜻한 행복 공동체를 만들자는 취지로 지역 노인들을 대상으로 매주 2회씩 찾아가는 한글 교육을 했다.
1년 동안 한글 교사 58명이 투입됐고, 145개 마을 1천650명의 노인이 한글을 배웠다.
마을별로 진행된 수료식은 수료증 수여 및 우수학생 표창, 소감문 낭독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한글대학 총장인 황명선 시장은 노인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사랑과 정성으로 수료증을 전달해 따뜻하고 훈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평생 처음 한글을 배우고 글쓰기 재미에 빠진 노인들은 수료식이 신기하기만 했다.
팔순이 넘은 노인들이 학사모와 학사 가운을 입고 자녀·손주들과 함께 사진도 찍는 모습은 보는 사람조차 뭉클하게 했다.
최고령 학생은 광석면에 거주하는 101세의 이태희 할머니였다.
이 할머니는 수료식에서 개근상을 받는 영광도 누렸다.
일부 할머니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전쟁보다 무서운 가난 때문에 학교에 다니지 못하면서 한글을 몰라 버스를 두세 번씩 갈아타던 부끄러움을 이제는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먼저 간 남편을 향해 그리움이 묻어나는 편지를 쓸 수 있고, 손주들의 생일 축하 카드도 혼자서 읽을 수 있다.
노인들은 이미 지난 한글날 백일장을 통해 한글 실력을 마음껏 뽐냈다.
수필·시화·글 옮겨적기로 나눠 진행된 백일장에서 노인들은 그동안 갈고 닦은 한글 실력을 자랑했고, 일부 작품은 심사위원들조차 깜짝 놀라게 했다.
한 할머니는 졸업식에서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 볼 수 있어 이제 집에 거꾸로 가지 않아도 된다"며 "이제 까막눈이 아니다. 인생에서 가장 값지고 보람찬 순간"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할머니는 "이제는 은행이나 면사무소도 자신 있게 갈 수 있다"며 "하늘에 먼저 간 남편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제일 먼저 알려주고 싶다"고 말해 주위를 뭉클하게 했다.
논산시는 내년에 260개 마을 2천600여명에게 한글을 가르칠 예정이다.
황명선 논산시장은 "배우지 못한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배우지 않으려는 자세가 부끄러운 것"이라며 "앞으로도 어르신들의 배움에 대한 소망이 모두 이뤄져 활기차고 보람 있는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jk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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