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삼성 지배력 균열' 시발점 평가
삼성, 순순히 팔면 순환출자 고리 7→4개로 줄어…대응 관심
공정위, 2년 만에 결정 뒤집어
(세종=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정 2년 만에 '합병 관련 신규 순환출자 금지 법 집행 가이드라인'의 오류를 인정하고 이를 정정하기로 한 것은 삼성의 청탁에 따라 청와대 등 부당한 외압이 있었다는 지적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에 대한 1심 재판에서 가이드라인과 관련해 "삼성의 청탁이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뒤늦게나마 잘못된 부분을 정정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지만, 불과 2년 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결정을 뒤집으면서 공정위의 법 집행 신뢰성과 예측 가능성이 크게 훼손됐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이 추가로 매각해야 하는 삼성물산[028260] 주식은 기존 매각 주식의 80%에 달하는 404만주(20일 종가기준 5천276억원어치)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삼성 측의 반발도 예상된다.
이번 결정이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력에 균열이 생기는 시발점이라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외부 법률 전문가를 대상으로 폭넓은 의견수렴을 통해 이러한 삼성에 대한 후속조치가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지만, 소송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 2년 만에 가이드라인 정정…"외압 때문에 오류"
21일 공정위에 따르면 이번 가이드라인 재검토의 계기는 최근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국정논란 관련 뇌물공여죄 1심 판결이 결정적이었다.
서울중앙지법은 가이드라인 작성 경위와 적용에 대해 "삼성의 청탁이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국회에서 기존 가이드라인이 부당한 외압에 의해 결론이 바뀐 의혹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고, 변경 필요성과 함께 가이드라인이 아닌 법적 형태를 갖추라는 주문도 있었다.
결국 가이드라인이 흔들리면서 다른 순환출자를 보유한 기업집단의 예측 가능성이 저해되고 공정위의 법 집행도 불확실한 상태에 놓이게 됐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이를 해소하고자 두 차례 전원회의 토의에서 가이드라인의 오류를 발견하고 이를 수정하기로 했다.
특히 법적 시비를 막기 위해 지난 11월 내부 1명, 외부 7명 등 경쟁법·행정법 전문가를 대상으로 의견수렴을 거쳐 심도 있는 자문결과를 받았다고 공정위는 강조했다.
공정위는 법적 형태를 갖추라는 주문에는 예규로 제정하기로 했다.
가이드라인의 목적은 공정거래법에 대한 공정위의 통일된 해석기준을 수립하는 것이므로, 반복적 행정사무의 처리 기준인 예규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 2년 전 결정 번복…"법률 변경 없어 문제없다"
이번 공정위의 결정 따라 생기는 추가 쟁점은 과연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변경 사항을 추가 적용할 수 있는지다.
과거에 한 번 결정한 사항을 규정이 변했다는 이유로 재적용하면 소급 논란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후속조치, 다시 말해 2015년 합병 상황을 변경된 규정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거래법에 규정된 순환출자 규제는 2015년 당시나 현재나 변동이 없고, 단지 그 해석기준만이 변경됐기 때문에 소급으로 볼 수 없다는 논리다.
기존의 순환출자 규제 관련 법률 '해석'이 잘못된 것이라면, 이를 바로 잡아 정당한 처분을 다시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다만 변경 해석기준을 적용해 처분대상 주식 수가 증가하게 되면 그 이행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점을 고려해 6개월의 유예기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기간이 지나고도 처분하지 않으면 시행명령 등 후속조치를 하기로 했다.
뒤늦게나마 잘못된 부분을 정정했다는 점은 높게 평가할 만하지만, 불과 2년 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결정을 뒤집은 점은 공정위의 법 집행 신뢰성과 예측 가능성이 크게 훼손됐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을 전망이다.
공정위는 2015년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때도 "법 집행의 통일성 및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했지만, 2년 만에 통일성과 예측성은 크게 저하됐다.
◇ "공정위 결정 변경은 이재용 부회장 삼성 지배력 균열 시발점"
이번 변경은 이 부회장 삼성그룹 지배력에 균열이 가는 시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는 이번 변경에 따른 삼성SDI[006400]의 처분 주식 수를 공표하지는 않았지만, 변경내용을 보면 삼성물산 404만2천758주(2.1% ·20일 종가기준 5천276억원어치)를 매각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삼성 지배구조의 핵심은 주력인 삼성전자 지배인데,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0.65%에 불과하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지분 4.61%를 가지고 있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특수관계인 포함 지분율 39.08%)로서 삼성전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2.1%에 불과하므로 당장 지배력이 흔들릴 일은 없다. 하지만 향후 보험업법 개정이나 금융그룹통합감독시스템이 시행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삼성생명[032830]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8.19%)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어 이 부회장에게는 삼성물산 주식이 한 주라도 아쉬운 상황이 올 수 있다.
따라서 삼성그룹이 이번 가이드라인 변경에 따른 후속조치를 순순히 따르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정위가 제시한 소급 적용이 아니라는 논리를 문제 삼을 수도 있다. 아니면 변경의 계기인 이 부회장에 대한 대법원 최종 결과까지 다툴 수도 있다.
그러나 새 정부 기조를 받아들여 주식 매각에 순순히 따른다면, 현재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고리는 7개에서 4개로 줄어들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삼성물산→생명보험→삼성전자→SDI→삼성물산', '삼성물산→생명보험→화재보험→삼성전자→SDI→삼성물산', '삼성물산→삼성전자→SDI→삼성물산' 등 3개 고리가 깨지며 순환출자가 완화될 수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정위의 판단은 이 부회장 지배력 균열의 시발점"이라며 "계열사가 매각 주식을 매입하면 새로운 순환출자 형성 문제도 생기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공정위가 공익법인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기에 이전처럼 삼성생명공익재단 동원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며 "이 문제를 삼성이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지켜봐야 한다"고 전했다.
참여연대 안진걸 공동사무처장은 "이번 공정위의 결정을 계기로 삼성그룹 차원에서 지배구조를 재편해 투명한 글로벌 대기업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vs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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