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 전투 재현하고자 추진…학계·정치권 반발에 백지화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울산시 중구가 울산왜성의 흔적이 남은 학성공원에 왜장의 동상을 건립하려던 계획을 철회하기로 했다.
우리 땅을 유린했던 왜장의 동상을 세우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비판을 수용한 것이다.
중구는 울산왜성 등 역사문화 유산을 간직한 학성공원 일원의 도시경관을 정비해 새로운 지역 브랜드로 만드는 '학성르네상스 도시경관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총 1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정유재란을 주제로 한 조형물과 성벽 등을 조성하고, 나무 등을 심어 일대 경관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중구는 이 사업의 하나로 공원 입구에 조선의 권율 장군, 명나라의 양호 장군, 왜장인 가토 기요마사 등 3기의 동상을 이달 말까지 설치할 예정이었다.
권율과 양호 장군의 동상은 높이 2.7m의 기마상으로, 가토는 1.2m의 좌상으로 각각 계획했다. 이는 진격하는 조선·명나라 연합군과 성안에 고립돼 고전을 면치 못하는 왜군의 상황을 묘사하려는 목적이라고 중구는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이유만으로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조성된 학성공원에 왜장의 동상을 세워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일부 학계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우리 땅을 유린한 왜장의 동상을 세우는 것은 우리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성토가 잇따랐다.
박성민 중구청장은 이와 같은 여론을 수렴해 가토 동상 설치 계획을 철회하기로 했다.
천병태(민중당) 중구의원은 21일 열린 중구의회 제203회 정례회 본회의에서 구정질문을 통해 "가토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른팔에 해당하는 인물로, 일본인들이 임진왜란을 대표하는 장수로 생각한 가토의 동상을 우리가 만들어 세우는 것은 스스로 역사의식을 흐리게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박 구청장에게 대책을 물었다.
박 구청장은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왜군을 포위한 상황을 묘사하고 그 치열함과 처절함을 표현하고자, 14일 동안 물을 마시지 못해 괴로워하는 가토 동상 설치를 구상했었다"면서 "당시 전투를 사실적으로 묘사해 학생들에게 애국심을 일깨우고, 학습의 장으로 활용하는 효과도 기대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시민 정서가 왜군 장수의 조형물을 반대하고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다면, 재검토하는 것이 맞는다고 판단해 철회하는 방향으로 재검토할 것을 지시했다"면서 "울산왜성이 울산시 문화재인 만큼 시와 협의를 거쳐 가토 조형물 제작을 중단하고, 다른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학성공원에 흔적이 남아 있는 울산왜성은 신라의 계변성으로 불리던 성을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새로 쌓았다. 조선군에서는 섬처럼 생긴 형상이라 뜻에서 도산성이라 불렀다.
정유재란 당시 울산왜성에서는 조선·명나라 연합군과 왜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왜군에게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동안 치른 육지전투 가운데 가장 고전한 전투로 기록돼 있다.
hk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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