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출신 김애화, 한국 귀화 류메이, 젖먹이 떼놓은 펑샤 씨
올림픽·패럴림픽서 맹활약 기대…"한중 우호에 기여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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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올림픽을 TV로만 접해 왔는데 직접 참여해 봉사할 기회를 얻게 돼 영광스럽고 뿌듯합니다. 경기 중 다치는 선수나 병에 걸리는 관중이 없기를 바라지만 만일 환자가 생기면 그동안 배우고 익힌 통역 실력과 의료 지식을 활용해 신속하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내년 2월 9∼25일 평창 동계 올림픽과 3월 9∼18일 패럴림픽에서 의료진과 환자 사이의 통역을 맡을 요원 가운데는 중국 출신의 결혼이주여성 3명이 포함돼 있다. 올림픽 개막을 50일 앞둔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의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보건산업교육본부 강의실에서 만난 김애화(37)·류메이(劉美·38)·펑샤(馮霞·38) 씨는 "개막일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설렌다"며 들뜬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평창 올림픽과 패럴림픽 조직위원회의 의료통역 인력 지원을 요청받은 보건복지인력개발원은 2009년부터 지금까지 보건산업교육본부가 배출한 의료통역 요원 1천500여 명에게 공지를 띄워 109명의 신청자를 받았고, 조직위의 심사를 거쳐 34명이 최종 선발됐다. 이들 3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한국인이다. 김 씨와 펑 씨는 중국어와 영어, 류 씨는 중국어와 일어 통역을 각각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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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가운데 가장 베테랑은 중국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에서 태어난 조선족 김애화 씨다. 장쑤(江蘇)성 우시(無錫)에서 대학을 나와 간호사로 일하다가 2004년 한국으로 유학한 뒤 석사학위를 마치고 서울 종로구 통일로 세란병원의 국제협력팀장으로 근무했다. 국제의료마케팅 전문과정, 국제의료 경영관리자과정, 의료통역 강사과정 등 보건산업교육본부의 다양한 과정을 수료하고 이곳에서 강사로도 활동했다. 국제의료 코디네이터 전문과정을 막 끝낸 류메이 씨와 펑샤 씨도 그에게서 배웠다.
"통역에도 여러 분야가 있는데 의료통역이 가장 어렵고 중요합니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환자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거든요. 한국 사람끼리도 의사가 어떻게 아프냐고 물으면 콕 짚어 대답하기 쉽지 않죠. 수술 들어가기 전 주의사항 등도 정확히 전달해야 하는 데다 환자가 앓았던 병이나 복용하는 약 등을 의사가 알아야 하니까 외국어 실력에 의료 지식까지 있어야죠. 또 신조어도 자꾸 생겨나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습니다."
한국인 남편은 대학원 지도교수의 소개로 만나 양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2010년 결혼했다. "당신이 한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증명할 좋은 기회"라는 남편의 권유에 따라 평창행을 지원했고 합격 소식을 듣자 다니던 병원에 사표까지 냈다.
이번 대회에서 닥칠 여러 상황과 대응 매뉴얼 등을 자료로 정리해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활용할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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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메이 씨는 아버지가 베이징 출신 한족이지만 중국 서북부 닝샤후이(寧夏回)족자치구의 인촨(銀川)에서 나고 자랐다. 베이징사범대에 다닐 때 어학연수생을 인솔해온 한국인 국어교사를 만나 2002년 결혼했다. 초등학교 6학년짜리 딸을 두고 있으며 한국 국적을 얻었다.
"제게 중국어를 배우는 학생 아버지 가운데 치과의사가 계셨어요. 그 병원에 다니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한국과 중국 사이의 의료 인력 수요가 많은 것 같아 국제의료 코디네이터 전문과정과 의료행정 해외진출 실무과정을 수료하고 글로벌 헬스케어를 위한 의학용어 사이버과정도 마쳤죠. 새로운 조국인 한국에 기여할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여겨 평창 근무를 신청했습니다. 저는 아기를 낳자마자 한국에서 다문화가족 지원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돼 혜택을 참 많이 받았어요. 이젠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나눠줘야죠."
펑샤 씨는 푸젠(福建)성 융안(永安) 출신의 한족으로 베이징 런민(人民)대를 졸업했다. 대학원에서 만난 한국 유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호감을 느껴 2004년 한국으로 건너왔다. 어학과정을 마치고 1년 뒤 귀국했다가 한국을 잊지 못해 3년 만에 다시 와 호주계 회사의 한국법인에서 회계사로 일하는 한국인을 교회에서 만나 2015년 짝을 이뤘다.
"갓난아기를 키우며 공부한다는 게 쉽지 않았어요. 잠잘 시간도 부족했으니까요. 20대 젊은 친구들에 비해 기억력도 떨어지는 것 같아 힘들었죠. 이왕 시작한 것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집중했더니 뜻밖에 수료식 때 최우수상을 받았죠. 아기를 낳은 기쁨이 출산의 고통을 다 잊게 만드는 것처럼 공부와 육아를 병행하느라 힘든 기억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펑샤 씨는 힘든 결정을 내렸다. 패럴림픽에만 참여하고 근무지도 호텔이지만 3월 1일부터 꼬박 3주 동안 생후 10개월 아기와 떨어져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기를 중국 친정에 맡기려고 모유 수유도 미리 끊었다.
올림픽과 패럴림픽에 모두 참여하는 류메이 씨는 1월 말부터 두 달간 강릉 올림픽파크에서 활동할 예정이다. "사춘기인 딸이 혼자 있는 걸 좋아해 은근히 반기는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다가도 이내 표정을 바꿔 "딸의 응원 덕에 도전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류메이 씨와 펑샤 씨는 둘 다 근무지가 경기장이 아니고 실내여서 추위 걱정은 하지 않는다. 다만 숙소와의 거리가 멀고 휴일 없이 3교대로 24시간 대기해야 한다. 올림픽과 패럴림픽 현장에 있으면서도 막상 경기는 보기 힘들 것 같다며 아쉬워한다.
간호사 출신으로 의료통역 경험이 가장 많은 김애화 씨는 크로스컨트리 경기가 열리는 평창 알펜시아 스키센터로 배정받았다. 야외에서 근무해야 하므로 4시간씩 교대한다고 한다. "평소 추위를 많이 타 걱정이 태산"이라면서도 "추위에 대한 공포를 떨치는 계기로 삼겠다"고 의욕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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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결혼이주여성으로 살며 겪은 일화나 한국인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해 달라고 하자 결혼도 가장 먼저 했고 아이를 키운 경험도 오래된 류 씨가 초보 엄마인 펑 씨나 아이가 없는 김 씨보다 훨씬 말이 많아졌다.
"가장 부러운 건 자연이에요. 회사 동료가 등산 간다고 해서 며칠 걸리는 줄 알았는데 금방 다시 나타나 깜짝 놀랐죠. 베이징에는 가까운 데 산이 없거든요. 서울은 주변에 산이 많고 바다도 멀지 않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다녀올 수 있죠. 제 외모가 한국인과 잘 구별되지 않으니 차별받는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어느 날 생일을 맞은 딸 친구 집에 갔더니 엄마들이 한창 얘기하다가 제가 오니까 딱 그치더라고요. 내색은 안 했지만 저를 '왕따'시키는 것 같아 섭섭했죠. 한국 사람은 정이 많은 게 장점이자 단점이에요. 길에서 만난 사람이 제 아이를 보고 웃어주니 친정어머니가 아는 사람이냐고 묻더군요. 중국인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아는 척하지 않거든요. 남의 일에 관심이 많다 보니 참견하려 드는 게 문제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하고 공중질서를 잘 지키는 게 부러워요. 자신의 주장이 너무 강해 직장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많았죠."(펑 씨)
"'빨리빨리'를 강조하는 성격이 한국을 발전시킨 거라고 생각해요. '언제 밥 한번 먹자'라거나 '우리 집에 놀러 와'라는 빈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가 허탈해한 경험이 많았죠. 이젠 안 속아요."(김 씨)
이들이 함께 품고 있는 바람이 또 하나 있다. 풀릴 듯 말 듯한 한중관계가 올림픽을 계기로 확 풀렸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한국인으로 시집온 선택에 보람을 느끼고 아이들의 가능성도 더욱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양국 국민 사이의 감정이 나빠지다 보니 저희가 괜히 잘못한 것 같아 눈치를 살피게 돼요. 두 나라 사이가 좋을 때는 전철 안에서 중국어로 크게 말해도 괜찮았거든요. 올림픽에서 저희가 임무를 잘해내면 양국 우호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믿어요.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 말고 저희도 많이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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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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