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규제의 30% 이상은 법규 개정 없이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풀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22일 기자간담회에서 "법률을 고치기는 쉽지 않다"면서 "법을 고치지 않고 행정부가 할 수 있는 규제 완화 방법을 우선 찾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시행령, 시행규칙, 심지어 그런 법규조차 없는 '서랍 속 규제'를 완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했다. 규제개혁에 필요한 법률 개정이 국회에서 진전을 보이지 않자 일단 행정부 차원에서 가능한 조치를 다 하겠다는 뜻인 것 같다.
김 부총리는 "규제로 형성된 보상체계가 있고 이를 통해 형성된 기득권층이 있다"면서 "규제를 풀기 위해서는 기득권을 깨야 하고 이 과정에서 사회적 공론화가 중요하다"는 말도 했다. 그간 규제개혁 노력이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규제로 이익을 얻는 기득권층의 반발 때문이라는 말 같다. 사실 규제개혁의 필요성과 시급성은 끊임없이 거론됐다. 문제는 이행 속도가 너무 늦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말 '혁신성장 전략회의'에서 "(한국의) 규제 유연성이 세계 95위로 까마득하게 뒤처져 있다. 김영삼 정부 때 세계화를 하면서 규제 완화를 논의하기 시작해 20년 가까이 왔는데 아직도 안 된 이유가 뭔가"라고 질책했다. 문 대통령은 "민간의 상상력을 낡은 규제와 관행이 발목 잡아서는 안 된다"며 "규제 혁신은 속도와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규제개혁이 더딘 것은 무엇보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공무원들의 무사안일과 보신주의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산업 현장의 급격한 변화를 외면한 채 기존 규범에만 매달려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법에 명시된 것 외에 모두 안 된다는 식이면 기업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김 부총리의 이날 발언이 공무원 사회의 복지부동에 자극을 주었으면 좋겠다.
미국 등 선진국이 규제 완화에 적극적인 것은 규제 장벽을 방치하고는 산업경쟁력 강화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산업경쟁력이 떨어지면 국가 경제성장도 물 건너가는 것이다. 정부도 불합리한 규제를 푼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4차 산업혁명위원회' 첫 회의를 주재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풀어 혁신적 창업국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2차 규제 혁파 현장대화'에서도 다양한 방안이 제시됐다. 신산업·신기술 육성을 위해 규제법 체계를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고, 일정 기간 규제 없이 혁신 서비스나 제품을 테스트하는 '규제 샌드 박스'를 내년부터 도입한다고 한다. 그런데 풀어야 할 규제가 너무 많아 웬만한 강도와 속도로는 효과를 가시화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의 규제 관련 법령이 6천 개 이상이고, 이런 법령을 근거로 만들어진 조례·규칙도 3만9천여 개에 달한다고 한다. 결국, 상위 규제법부터 손질해야 하는데 국회에 걸려 꼼짝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들이 학수고대하는 '규제프리존특별법'도 그런 예다. 얼마나 답답하면 경제부총리가 정부 재량 안에서 '책상 속 규제'를 먼저 풀자고 했겠는가. 정부가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국회가 뒷짐만 지고 있으면 국민의 손가락질을 피하기 어렵다. 국회가 초당적 협력으로 규제개혁 법안을 하루빨리 처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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