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서 열연…"나이듦과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
미국 생활 14년 만에 연기 복귀…"남편 이창순, 목사 안수받아"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14년 만에 돌아온 원미경(57)이 안방극장에 강한 울림을 남기고 다시 떠났다.
그는 지난 10여년 살아온 미국 버지니아주 집에서 전화를 받았다. tvN 4부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로 안방극장을 눈물바다로 만들고는 홀연히 미국으로 떠난 원미경을 최근 인터뷰했다.
◇ "연기하면서 시름시름 앓아…나도 두려웠다"
노희경 작가의 동명 작품을 21년 만에 리메이크 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두 자녀와 의사 남편, 치매 시어머니를 둔 중년의 여성 인희가 하루아침에 죽음을 선고받고 사랑하는 이들과 이별하는 과정을 조명한 드라마다.
"인희랑 제가 같은 나이어서 그런지 연기하면서 인희와 같이 시름시름 앓아갔어요. 막 열심히 달려든 것도 아닌데 살이 너무 빠져서 다들 '어디 아픈 거 아니냐'고 걱정을 많이 했을 정도예요. 연기하는 내내 나라면 어땠을까, 나도 인희와 같은 상황이 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촬영 시작부터 끝까지 인희의 삶을 살았던 것 같아요."
사실은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다. '뻔한 신파'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노희경 작가의 대본은 간결하면서도 깊었고, 원미경이 해석한 인희는 시청자의 명치 끝에 걸린 채 모두의 엄마가 돼 진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리허설하기가 겁날 정도로 배우도 스태프도 많이 울었어요. 리허설하면서 울음이 터질까 봐 배우들이 서로 눈을 제대로 못 맞췄죠. 감정이 너무 오버되면 안되니까 그걸 조절하는 게 힘들었어요. 근데 참 이상하죠? 죽음을 다룬 드라마는 많은데 이 작품은 왜 그리 공감할까요?"
배역이 임자를 만난 덕이다. 낙천적이고 착하고 푸근한 인희와 원미경은 하나가 됐다. 특히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다정하게 보살피는 인희의 모습이 전혀 어색하게 보이지 않았다.
"시어머니 역의 김영옥 선생님과 호흡 맞출 때 저는 시어머니가 왜 그런지 너무 귀여웠어요. 선생님이 '넌 치매 걸린 시엄마가 뭐가 예쁘냐?'며 의아해하셨는데, 저는 진짜 시어머니가 예뻐 보였고 귀여웠어요. 그런 감정과 연기는 우러나오지 않으면 못하잖아요. 가짜로는 못해요. 인희로서는 피할 수 없으니까 받아들인 거라고 봐요. 미움보다는 연민이 많았던 거죠."
하지만 치매에 대한 두려움은 다른 이야기다.
"저도 두려웠어요. 저도 20년 후엔 저런 모습이 될지 모르는 것 아니겠어요. 우리 모두 미래는 모르니 누구든지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인 것 같아요. 나이듦과 죽음에 대해 굉장히 많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어요."
◇ "노희경 작가 이름만 듣고 출연…20년 후엔 치매 시어머니 역 하고파"
이 작품은 원미경에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그는 지난 10월 두달 일정으로 잠시 귀국했다가 계획에도 없던 이 작품을 한달간 찍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원작도, 노희경 작가님도 잘 몰랐어요. 그런데 작년에 제가 '가화만사성' 찍을 때 노 작가님의 '디어 마이 프렌드'가 방송되고 있어서 그걸 보게 됐어요. 정말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했고, 그런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굉장히 부러웠어요. 어떻게 저런 작품을 기획하나 싶었고, 기회가 돼서 촬영장에 한번 놀러 갔었어요. 김혜자 선생님, 나문희 선생님을 뵙고 인사했더랬어요. 그런데 이번에 노 작가님 작품을 하자는 거에요. 어떤 작품인지도 모르고 노 작가님 이름만 듣고 하겠다고 했어요.(웃음)"
1996년 원작에서 나문희가 연기했던 인희와 이번에 원미경이 연기한 인희는 결이 많이 다르다.
"출연 결정을 한 후 노 작가님을 만나 2시간 동안 이야기를 했는데 작가님이 그때 본 제 모습을 이번 대본에 많이 반영하셨대요. 실제로 원작 대본과 이번 대본의 인희 캐릭터가 다르더라고요. 제 모습에 맞게 바꿔주신 배려가 너무 고마웠죠."
원미경은 "복귀작으로 이 작품을 제안받았더라면 못한다고 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노 작가님 이름만 듣고 한다고 해놓고 나중에 대본을 읽어보니 이 일을 어쩐다 싶더라고요. 너무 너무 힘든 신들이 많아서 과연 내가 14년의 공백을 뛰어넘어서 할 수 있을까, 겁 없이 덤볐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대본은 원미경의 연기 세포를 깨웠다.
"작품이 좋으니 대사나 전개가 무리 없이 녹아들어서 막상 촬영하면서는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었어요. 작품이 워낙 좋고, 억지스러운 신이 하나도 없으니 대본에 쓰인 대로만 하면 됐어요."
한 발 더 나가 '욕심'도 생겼다. "20년 후에는 제가 치매 시어머니 역을 하고 싶어요. 김영옥 선생님한테 '저도 선생님처럼 예쁘게 나이 들고 싶어요. 20년 후에는 제가 이 역할 할 거예요'라고 했어요.(웃음)"
◇ "미국서 엄마로서의 삶에 집중…남편 개척교회 하고 싶어해"
1978년 미스 롯데 선발대회 1등 출신인 원미경은 '사랑과 진실'로 큰 사랑을 받았고, '내일이 오면' '아파트' 등의 작품을 통해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2000년에는 '아줌마'로 다시 한번 이름을 날렸고, 2002년 '고백'을 끝으로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갔다.
그의 남편은 MBC 드라마 PD로 '애인' '신데렐라' '눈사람' 등을 히트시킨 이창순 씨. 그러나 돌연 미국으로 떠난 이씨는 올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
"굉장히 바빴어요. 엄마로서 할 일이 많았어요. 이전까지 놓치고 갔던 게 많아서 빈틈을 채우느라 바빴어요. 딸 둘, 아들 하나예요. 빈틈을 다 채웠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엄마로서 산 삶이 배우로서 산 삶보다 더 화려했던 것 같아요. 제 삶을 더 직시할 수도 있었고요. 막내가 대학을 가서 작년에 복귀를 생각하게 됐지요. 지난 6월에는 큰딸이 결혼해서 사위도 봤어요."
그는 작년 MBC TV '가화만사성'으로 14년 만에 연기를 재개한 뒤 SBS TV '귓속말'까지 찍은 후 다시 미국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지난 10월 남편이 목사 안수받은 기념으로 한국으로 여행을 왔다가 단막극 한편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찍게 됐다.
"미국으로 떠나올 줄도 몰랐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연기를 하게 될 줄도 몰랐어요. 계획이 없는 삶이 됐어요. 대신 어떤 미래든 기쁘게 기대하고 있죠. 남편이 개척교회를 하고 싶어 해요. 이곳의 삶이 있고, 교회 일이 있으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연기를 언제 다시 할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참 궁금해요. 제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지."
원미경 자신이 목회자가 된 듯했다. '짱짱'했고 강렬했던 1980~90년대의 스타 원미경은 사라지고, 조용히 흘러가는 맑은 시냇물 같은 온화한 여인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는 통화 내내 자상했고 따뜻했다.
"많이 달라졌나요?(웃음) 삶이 달라졌기 때문에 저도 바뀔 수밖에 없었겠죠. (미국에서)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고, (목사 공부하는) 남편 옆에서 같이 지냈으니."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하나는 있다. "연기를 다시 하면서 굉장히 즐거웠어요."
그는 "돌아온 저를 반가워해 주셔서 기쁘고 감사하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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