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책임인정' 등 진전사항보다 '불가역 해결' 등 문제가 더 부각
TF보고서, 한국외교에 교훈 남겼지만 외교 행보에 제약 초래 우려도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한일위안부 합의가 타결 및 발표된지 28일로 2주년을 맞았다. 합의 당시만 해도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오랜 경색 국면을 보낸 한일관계의 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지만 2년 만에 존폐의 기로에 섰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윤병세-기시다 후미오)의 대(對) 언론 발표 형태로 나온 위안부 합의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라며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일본 외무상은 자국 현직 정상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대신 표명했다. 그리고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 회복 및 심적 상처 치유 사업을 하는 재단을 설립해 일본 정부 예산으로 10억 엔(약 95억 원)을 출연하기로 했다.
그 후부터 현재까지 생존 피해자 47명(합의 당시 기준) 중 36명(약 77%)과 사망 피해자 199명의 유가족 68명이 피해자 지원을 위한 '화해·치유' 재단을 통해 치유금을 수령했다.
표면적으로 합의는 이행되고 있지만 그동안 제기됐던 합의의 문제점들이 외교장관 직속 검토 TF의 검증을 통해 실증적으로 재부각되면서 유지냐 파기냐의 갈림길에 선 상황이다.
TF는 보고서에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수식어 없이 명시하도록 한 것은 책임에 관한 언급이 없었던 고노담화(위안부 제도 운영에 일본 군과 관헌이 관여한 사실을 인정한 담화)와, 책임 앞에 '도의적'이 붙어 있었던 아시아여성기금 당시 일본 총리 편지와 비교해 진전이라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여기에다 "'일본 정부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는 데 더해, 총리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 표명, 그리고 일본 정부의 예산 출연을 전제로 한 재단 설립이 합의 내용에 포함된 것은 일본이 법적 책임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합의가 거둬낸 일정한 성과와 진전을 일부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과보다는 TF의 검증을 통해 확인된 합의의 문제점들이 지난 2년간 주로 부각되면서 다수의 국민이 정서적으로 합의를 수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여기에는 한일 양국 정부 모두 책임 추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위안부 합의에 명시된 사죄 표현을 담아 피해자들에게 편지를 쓸 생각이 있느냐는 야당의원의 질문에 아베 총리가 "추호도 없다"고 답한 것을 비롯해 일본은 합의에 담긴 사죄와 책임 통감을 행동으로 보여주는데 극히 인색했다. 오직 '최종적·불가역적 해결'만을 되뇌이면서 합의에 대한 한국내 반발을 부채질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우리 정부도 합의 당사자인 윤병세 당시 외교장관이 반대하는 피해자들과 한차례도 만나지 않은 것을 포함, 피해자 측이 합의를 받아들이게 하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일본의 성의 있는 후속 행보를 끌어내지도 못했다.
합의를 둘러싸고 피해자들이 생존해있는 동안 해결책을 찾고, 한일관계를 정상화하려는 한국 정부의 목표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한국 측 요구에 마침표를 찍으려는 일본 정부의 목표가 엇갈렸기에 예견된 파국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기에 더해 해외 소녀상 설치를 정부가 지원하지 않고, 합의에 불만을 가진 국내 피해자 설득 노력을 하겠다는 등 우리 정부에게 부담되는 내용들이 합의의 '비공개 부분'으로 존재하는 사실이 TF의 검증에서 드러나면서 합의는 더욱 빛이 바랬다.
피해자들과 여러 차례 만나 의견을 들었지만 합의 내용 중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확인', '국제사회 비난·비판 자제' 등 한국 쪽이 취해야 할 조치가 있다는 점은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았고, 10억 엔이라는 일본 정부 출연금 액수에 관해서도 피해자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것으로 TF 보고서에 드러나 '피해자 중심주의'와 거리가 먼 합의라는 점이 부각됐다.
약 5개월간의 검증을 거쳐 민낯을 드러낸 위안부 합의는 우리 외교에 명암을 동시에 남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국익 측면의 고려가 인권 옹호라는 사안의 본질을 압도한 점, '불가역적'이라는 단어를 사죄의 불가역성을 강조하기 위해 우리 쪽에서 먼저 거론했다가 결국 '해결의 불가역성'으로 맥락이 변질돼 합의에 포함된 점 등은 외교당국이 비슷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되짚어봐야 할 교훈을 남겼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런 반면 비공개를 전제로 논의된 민감한 사항들을 합의 2년만에 공개한 것은 한일 외교당국간 신뢰 손상 뿐 아니라 앞으로 한국 외교 전반에 있어서도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없지 않다. 민감한 외교 현안에서 '비공개 구두 합의'와 같은 절충책을 택하기가 앞으로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대사는 "이런 위험한 결과가 초래되지 않도록 민감하고 중요한 외교정책일수록 외교정책 결정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해야한다"며 "외교는 국민 의식과 국익과의 균형을 찾아가야 하는데 국민 의식을 외면하고 밀어 부쳐서도 않되지만, 국민의식을 너무 추종해서도 안된다"고 말했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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