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비자로 불법체류하다 스페인행 시도…'정정불안' 본국추방 거부
유엔난민기구에 제3국 망명신청…짐바브웨 SNS 이용자들 '거짓말' 비판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쿠데타로 최근 정권이 바뀐 짐바브웨에서 온 일가족 8명이 태국 수도 방콕의 수완나품 공항에서 2개월째 생활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이 29일 보도했다.
이들의 상황은 쿠데타로 고국이 유령국가가 되면서 미국 공항에 갇혀 지내는 남성을 그린 할리우드 영화 '더 터미널'을 연상시키면서 동정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있지도 않은 정정불안을 이유로 본국행을 거부하는 이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성인 4명과 2∼11세의 미성년자 4명 등 모두 8명으로 구성된 이들 일가족의 영화 같은 공항 생활이 시작된 건 지난 10월 23일이다.
관광비자로 지난 5월에 태국에 입국한 이들은 스페인 바르셀로나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수완나품 공항에 왔다.
그러나 목적지인 스페인 비자도 받지 못한 이들은 공항에서 항공기 탑승을 거부당했고, 관광비자가 만료돼 불법체류 상태였기 때문에 태국 재입국도 불가능했다.
태국 이민 당국은 규정에 따라 짐바브웨 국적인 이들을 본국으로 추방하려 했지만, 이들은 정정이 불안하다며 고국행을 거부했다.
실제로 짐바브웨에서는 부패한 37년 독재자 무가베 퇴진 운동이 벌어졌고 지난달에는 쿠데타 끝에 정권이 바뀌었지만, 심각한 정정불안 상황은 없었다.
어쨌든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인 이들은 공항에서 생활하다가 지난달 7일 모리타니와 우크라이나를 거치는 경로로 스페인행을 재시도했다. 하지만 이들은 우크라이나 공항에서 스페인행 항공기 탑승을 거부당한 뒤 지난 13일 방콕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후 수완나품 공항 내 구금 시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지내온 이들의 사연은 한 태국인이 이들에게 성탄절 선물을 전달하는 장면을 SNS에 올리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수완나품 공항 관계자는 "이들은 공항과 이민 경찰이 제공한 구금 시설 내 방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시설이어서 분명 불편할 것이며, 특히 어린 아이들이 있어서 걱정이다"고 말했다.
고국으로의 강제 추방을 거부한 이들은 최근 유엔난민기구(UNHCR)에 제3국 망명을 요구했다.
UNHCR 태국 사무소 관계자는 "일단 이들이 제기한 망명신청을 접수하기로 했지만 개인 정보인 만큼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다. 이들을 위한 최선의 길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국 이민 경찰은 일단 이들을 방콕 시내 이민국 수용시설(IDC)로 옮겨 수용할 계획이다.
한편, 한 짐바브웨 트위터 이용자는 "도대체 우리나라의 정정이 뭐가 불안하다는 것이냐"고 반문했고, 다른 이용자는 " "경제적 위기를 제외하고는 짐바브웨는 평온하다. 나라 상황에 대해 거짓말을 해 피해를 주다니"라고 개탄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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