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바꾸자] ① 직장에서도 법대로 합시다…권위주의 갑질 '그만'

입력 2018-01-01 08:30   수정 2018-01-01 08:59

[올해는 바꾸자] ① 직장에서도 법대로 합시다…권위주의 갑질 '그만'
기업·군·학교내 성폭력·언어폭력·가혹행위 근절해야
권위주의·군대문화 대신 '일상의 법치주의' 뿌리내려야



(서울=연합뉴스) 안홍석 김지헌 기자 = 2017년 한해가 저물어가던 지난 12월 28일 '직장갑질119'의 카카오톡 오픈채팅 대화방에 들어가자 새 메시지를 알리는 알람이 쉴 새 없이 울렸다.
고객의 욕설과 성희롱, 못 받은 주휴수당, 직장 내 왕따 문제부터 부당해고나 상사의 폭언·폭행까지 직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형태의 '갑질'에 대한 상담과 하소연이 줄을 이었다.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상담 요청에 일일이 응했다. 직장인들은 '폭행이나 폭언을 기록하는 데 유용한 카메라 앱이 있다'는 등 팁을 공유하기도 했다.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이 대화방에 들어올 때 임의로 적는 아이디는 '당한 자', '을도 사람', '퇴사 꿈나무', '부장살의' 등 다양했지만, 처한 상황에 대한 분노가 반영됐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변호사와 노무사 등으로 꾸려진 직장갑질119는 오픈채팅과 이메일 등을 통한 상담으로 직장갑질 문제 해결을 돕는 시민단체다.
이날 저녁 한 시간 동안 120건이 넘는 상담 메시지가 올라올 정도로 오픈채팅 대화방은 뜨거웠다. 그만큼 직장에서 갑질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 단체가 2017년 10월 전국 직장인 7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 중 75.8%가 최근 3년간 직장에서 갑질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 끊임없이 터진 갑질사건…분노한 '을' = 지난 한 해 시민들의 가장 큰 공분을 모았던 이슈도 대부분 직장갑질과 관련한 것이었다.
1월 정일선 현대 BNG스틸 회장이 운전기사를 주 56시간 이상 일하게 하고 폭행까지 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은 것을 시작으로 한 해 동안 갑질 이슈는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연초 일부 증권사가 다른 증권사로 이직한 퇴직직원의 성과급 지급을 일방적으로 미뤘으며, 피해 직원들이 수백 명에 달한다는 뉴스는 여의도 금융권 직장인들을 분노케 했다. 제약회사 종근당 회장이 운전기사들에게 상습적으로 폭언을 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여성 직원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거나 성폭력 행위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은 회사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한림대의료원은 연례 체육행사 때마다 간호사들이 노출심한 옷을 입고 선정적인 춤을 추도록 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큰 논란을 빚었다.
이 의료원이 임금 체불에 대한 경영진의 처벌 수위를 낮추기 위해 직원들에게 탄원서를 돌려 사실상 강압적으로 서명을 받았다거나 직원들이 노조를 결성하지 못하도록 압박했다는 의혹이 연이어 제기됐다.
가구 제조사인 한샘은 신입 여직원이 회사 교육 담당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글을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 올리면서 홍역을 치렀다.
어느 조직보다 위계질서가 뚜렷한 군대에서도 갑질 의혹이 제기됐다. 군인권센터는 박찬주 육군 대장 부부가 공관병에게 전자팔찌를 채우고 텃밭 관리를 시키는 등 가혹한 지시를 일삼았다고 폭로했다.
군 검찰은 박 대장이 병사를 사적으로 이용한 측면은 있지만, 직권남용죄는 아니라며 갑질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고, 부실수사 논란이 이어졌다.


인천에서는 한 초등학교 교감이 교무실에서 교사를 종이 과녁 앞에 세운 뒤 체험용 활을 쐈다는 다소 황당한 갑질 사건이 벌어졌다. 이 교감은 인천시교육청으로부터 경징계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 기업, 교육계, 군대, 의료계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터져 나오는 갑질 사건을 접한 서민들은 위계관계의 아래층에 있는 자신에게도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점 때문에 피해자들에게 더욱 공감했다.

◇ 갑질문화, '법치'로 뿌리 뽑아야 = 전문가들은 위계와 서열을 중요시하는 수직적 문화가 직장갑질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의 발달로 항의하고 이의제기할 수 있는 창구가 다변화하면서 묻혀 있던 것들이 최근 들어 드러났을 뿐 갑질문화는 한국 직장에 뿌리 깊게 자리해왔다고 지적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은 상하관계가 명확하고, 위에서 명령을 내리면 밑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따라야 한다는 권위주의적 문화가 있다"면서 "이에 따라 굉장히 촘촘한 통제·명령과 복종에 의해서만 사회가 굴러오면서 직장에서의 갑질문화가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전상진 교수는 "특히 권력을 거의 독점한 지도층이 이익은 사유화하고 책임은 아래로 전가한다"며 "약한 자에게 강하게, 강한 자에게는 약하게 대해서 엘리트들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면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도 기회가 닿는다면 그런 식으로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갑질이 만연한 원인을 분석했다.
전상길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경영학과 교수도 "유교적이고 수직적인 한국적 인간관계에 군대 문화가 더해지면서 직장사회에 갑질이 자리 잡았다"고 진단했다.
이런 갑질문화는 직장인들뿐 아니라 기업 입장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전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갑질 제보 현상은 기업의 새로운 위기이며 이를 계기로 일신할 수 있어야 한다"며 "지금 같은 직장문화가 이어진다면 대다수 직원이 불만 가득한 직장 생활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고객이 외면한다. 갑질을 해소하지 못하면 기업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갑질문화를 해소하는 지름길은 '법치주의'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약자인 직장인이 제도의 힘을 빌려 부당한 대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행법으로도 직장 내 괴롭힘 등 갑질을 방지할 수 있는데 유명무실한 게 문제"라면서 "사회와 제도가 개인을 지원해 '힘의 균형'을 맞춰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상진 교수도 "대통령 탄핵도 이뤄지는 등 우리 사회에 법치주의가 자리를 잡았으나, 일상적 영역으로 내려가면 여전히 삐걱거리는 부분이 있다"면서 "일상적 영역에서도 법치주의가 작동해야 갑질문화를 빨리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ah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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