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안 대비 예타권한 대폭축소, 지출한도 공동설정 아예 빠져
과기심의회·과기전략회의→ 자문회의로 통합
(서울=연합뉴스) 신선미 기자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에 연간 20조원에 이르는 국가 연구개발(R&D) 예산권을 주려던 문재인 정부의 계획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면서 이를 바탕으로 연구개발(R&D) 혁신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구상이 차질을 빚게 됐다.
29일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에서 과기정통부로 R&D 예비타당성조사 권한(예타권)을 이관하는 내용을 담고 있던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대폭 수정돼 본회의를 통과했다.
본회의를 통과한 국가재정법 최종 법안은 국회에 제출됐던 원안에 비해 예타 권한이나 지출 한도 설정 등 핵심 사안에서 크게 후퇴한 것으로 평가된다.
예타는 대규모로 국가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을 진행하기 전에 사업 추진의 타당성과 가능성을 미리 검토하는 사업진행의 '첫 관문'이다.
이는 원래 기재부의 고유 권한이지만, 계획 단계에서 경제성이나 효과를 가늠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연구개발(R&D) 사업조차 기재부가 예타권을 쥐고 있는 탓에 선도적 연구의 길이 막히고 시간도 오래 걸려 투자 적기를 놓치는 등 문제가 크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이 때문에 지난 6월 우원식(더불어민주당) 등 국회의원 120명은 R&D 예타권을 기획재정부에서 과기정통부로 이관하고 기재부 단독으로 보유하던 R&D 지출한도 설정 권한을 기재부·과기정통부 공동권한으로 바꾸는 내용을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이 이 개정안에 대해 강력히 반대했다. 이들은 과기정통부가 가장 많은 연구개발(R&D) 예산을 쓰면서 예타권을 비롯한 예산권을 갖는 것은 '선수가 심판을 겸직하는 격'이며, R&D 분야에만 예외적으로 기재부가 아니라 과기부에 예타권을 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 때문에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이런 핵심 내용이 모두 변경됐다.
예타권의 경우 과기정통부가 기재부에서 '위탁' 형태로 받아 수행하도록 수정됐다. '예타권 이관'은 국가재정권의 큰 틀을 흔들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기재부가 과기정통부의 예타 결과를 평가할 수 있으며, 예타 방법과 절차를 기재부와 미리 상의해야 한다는 조건까지 덧붙여졌다.
R&D 예산 총지출 한도를 과기정통부와 기재부가 공동 설정하는 방안은 법안 심사 과정에서 아예 삭제돼 버렸으며, 추후 국회에서 다시 논의키로 했다.
세트 법안인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도 이런 내용을 반영해 다시 수정된 후 이날 나란히 국회를 통과했다.
문재인 정부는 당초 과기정통부에 R&D 예타 권한을 줘서 예타 검토 기간을 3분의 1로 줄이는 한편 R&D 투자 여부를 결정할 때 가늠 자체가 어려운 '경제성'에 중점을 두지 않도록 하겠다는 혁신안을 발표한 바 있으나, 29일 국회를 통과한 법안으로는 이런 구상의 실현에 지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날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과학기술정책의 '컨트롤타워'로 삼아 이 분야 혁신을 가속한다는 내용의 과학기술기본법 일부개정안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법 전부개정안은 모두 원안대로 국회를 통과했다.
법안은 박홍근 의원 등 11명 의원의 이름으로 지난 8월 국회에 제출됐다.
이번 개정안에 따라 국가과학기술심의회, 과학기술전략회의 등 다른 과학기술정책 기구는 폐지돼 자문회의로 통합된다.
통합 자문회의는 내년 4월 정식 출범할 예정이다.
s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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