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문으로 불길 확산·계단이 굴뚝 역할…한파에 소화전도 얼어 진화 어려움
이웃 4명 구한 가나 출신 군인, 5번째 구하러 갔다가 못 빠져나와
(뉴욕·서울=연합뉴스) 이준서 특파원 김연숙 기자 = 모두 12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국 뉴욕의 화재 참사는 3살 아이의 불장난에서 시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불꽃을 처음 발견한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탈출하면서 문을 열어둬 불길이 더욱 빠르게 퍼졌다는 것이 소방 당국의 설명이다.
빌 드빌라지오 뉴욕시장은 29일(현지시간) 지역 라디오 인터뷰에서 "불행하게도 이번 참사는 우연찮은 사고에서 시작됐다"면서 "어린아이가 아파트 1층에서 스토브를 갖고 노는 과정에서 발화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전날 밤 뉴욕 브롱크스의 5층짜리 아파트에서 불이 나 어린이 4명을 포함해 12명이 숨졌고 4명이 중태에 빠졌다.
뉴욕에서는 1990년 브롱크스의 한 사교클럽에서 불이 나 87명이 숨진 이래 27년 만에 최대 피해다.
사고 당시 아파트 1층 부엌에서 스토브가 넘어지면서 3살 아이가 소리를 질렀고, 엄마는 문을 열어놓은 채 아이와 함께 급히 아파트를 빠져나왔다고 뉴욕 소방당국은 설명했다.
다니엘 니그로 뉴욕소방서장은 "불길이 순식간에 위층으로 옮겨붙으면서 손을 쓸 겨를도 없이 큰불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미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1층에서 시작된 불이 확산하는 과정에서 계단이 굴뚝 역할을 했다고 보도했다.
하필 불이 시작된 집은 계단과 마주하고 있는 데다 문이 열려 있어 더 빨리 번졌다. 게다가 위층 주민들이 연기를 피해 창문을 열어젖히면서 산소가 공급돼 불길이 더 거세지는 효과를 가져왔다.
특히 이날은 올해 가장 추운 밤이었다. 기온은 영하 10℃ 안팎으로 떨어진 데다 강한 바람까지 겹친 한파에 소화전마저 얼어버렸다.
소방관들은 현장에 도착한 건 최초 신고 후 불과 3분 만이었다. 그러나 건물 앞 소화전에서 물을 끌어올 수 없었다. 한 블록 떨어진 곳에서 소화전을 끌어왔을 때는 이미 사망자가 나온 후였다.
일반적으로 천장에서 발견되는 그을음이 바닥, 발목 높이의 벽에서 보이는 걸 보면 불이 얼마나 뜨겁고 빨리 번졌는지를 알 수 있다고 NYT는 전했다.
이 건물엔 도미니카, 트리니다드, 가나, 기니, 자메이카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이 살고 있었다. 덮쳐오는 불길에 주민들은 창문을 열어 제각각의 언어로 살려달라고 외치는 등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사망자 중에는 이웃들을 구하고 자신은 미처 건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숨진 가나 출신의 군인도 있었다.
5년 전 가나에서 이민 온 20대 후반의 이매뉴얼 멘샤는 주민 4명을 구해냈다.
그의 삼촌은 NYT에 "5번째 사람을 구하러 갔을 때 불길이 그를 덮쳤다"고 전했다.
육군 주방위군에 들어갔던 멘샤는 마침 신병훈련을 마치고 귀가해 집에 머물고 있던 때였다. 11호에 살았던 멘샤는 15호에서 발견됐다.
사망자 가운데는 30대 중반인 엄마와 각각 7살과 2살인 두 딸, 19세 조카 등 일가족도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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