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1일 남북 간 대화 국면전환을 시사하는 신년사를 내놓았다. 김 위원장은 조선중앙TV로 내보낸 신년사 육성연설을 통해 평창동계올림픽이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며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처를 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무엇보다 북남 사이의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적 환경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는 물론 군사 당국 간 회담에도 응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김 위원장이 지난해 11월 29일 화성-15형을 시험 발사한 뒤 '국가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해, 올해 신년사에서 이런 언급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은 일부 나왔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 적극적이어서 주목된다. 북한의 진정성만 담보된다면 한반도 긴장 완화의 전기가 될 수도 있을 듯하다.
김 위원장은 새해에 남한은 평창동계올림픽을 열고, 북한은 공화국 창건 70돌을 맞아 "남북이 다 같이 의의 있는 해"라고 평가했다. 또 "민족적 대사들을 성대히 치르고 민족의 존엄과 기상을 내외에 떨치기 위해서라도 동결상태에 있는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면서 "그 누구에게도 대화와 접촉, 내왕의 길을 열어놓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대화공세'라고 할 만하다. 북한이 자체 선수단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위한 접촉을 시작으로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는 수순을 밟을지 기대된다. 김 위원장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밝힌 만큼 남북관계가 순조롭게 풀린다면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한 군사 당국 간 회담도 가능할 것이다. 이는 우리 정부가 바라마지않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줄곧 시도했지만,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에 매달리며 거부해 실마리를 찾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이날 발언을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지적도 보수 정치권 등에서 나온다.
김 위원장은 우리 정부를 향해 "외세와의 모든 핵전쟁 연습을 그만둬야 하고 미국의 핵 장비들과 침략 무력을 끌어들이는 일체의 행위를 걷어치워야 한다"고 했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과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중단하라는 의미인 것 같다. 이를 대화 국면전환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것인지 아니면 때마다 하는 통상적인 발언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대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이를 놓고 남남갈등이 유발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김 위원장은 또 미국을 겨냥해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다"면서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있다는 것은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위협했다. 남한에는 대화공세를 펴면서 미국에는 핵 위협을 계속한 셈이다. 일각에선 '통미봉남'을 하다 '통남봉미'로 돌아선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남한과의 대화를 고리로 미국 주도의 제재와 압박에 숨통을 트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해석이 분분하지만, 이 또한 한미 간의 갈등 요소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현재의 한반도 긴장 상황을 고려할 때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해서라도 일단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낼 필요가 있다. 북한이 다른 의도를 드러낸다면 그때 가서 따로 대처해도 된다.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 선수단 파견을 위한 접촉을 시사한 만큼 이를 시작으로 차근차근 접촉의 물꼬를 넓혀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남남갈등이나 한미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당국은 정교하게 상황을 관리해야 한다. 특히 남남갈등이 불거지지 않도록 유념할 필요가 있다. 우리 외교·안보의 근간인 한미동맹에도 오해나 갈등이 생기면 안 된다. 한반도에서 어떡해서든 전쟁을 막아야 하는 우리 정부와 군사적 옵션을 배제하지 않는 트럼프 행정부 사이에서 이견이 불거질 개연성은 항상 있다. 남북 간에 대화가 시작되고 대북 제재와 압박 공조에 틈이 벌어지는 듯한 낌새가 보이면 그런 갈등은 증폭될 것이다. 우리 정부가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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