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학살 지켜본 로힝야 아이들…"집단 정신건강 위기 우려"

입력 2018-01-01 17:24  

가족 학살 지켜본 로힝야 아이들…"집단 정신건강 위기 우려"
탈출 로힝야족 절반 이상이 미성년자…5세 미만도 30%
구호물품 두고 다투고 오물 속 헤치며 힘겨운 삶



(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 "군인들이 제 뒤를 쫓는 악몽을 꿔요. 잠에서 깨면 부모님 생각이 나서 한참을 그렇게 깨어 있어요."
올해 12살인 로힝야 소녀 제호라 베굼은 지난해 12월 3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베굼은 작년 8월 말 미얀마군과 불교 자경단원들이 미얀마 라카인주의 동네에 쳐들어왔을 때 엄마와 아빠, 형제자매 4명을 한꺼번에 잃었다.
베굼과 남동생 카이룰 아민만 겨우 도망쳐 방글라데시 난민 캠프에 도착했다.
베굼은 수로를 헤치며 달아날 때 골반 쪽에 총을 맞았다.
하지만 총상이라는 육체적 고통보다 훨씬 큰 것이 정신적 충격이다.
집이 불타고, 총알이 퍼붓는 가운데 가족들이 죽어가는 참혹한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서다.
NYT는 베굼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미얀마를 탈출한 로힝야 어린이들의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국제 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에 따르면 미얀마군의 탄압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도피한 65만5천여 명의 로힝야족 중 절반이 넘는 약 38만 명이 미성년자이며, 최소 30%가 5살 미만의 어린아이다.
실제로 로힝야 난민 캠프 어디에서든 어린아이들을 마주칠 수 있다.
이들은 꽉 끼는 턱시도 재킷에 농구 반바지를 입고 있는 등 어울리지 않는 기부 물품으로 겨우 몸을 가렸거나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아이들은 구호물자를 두고 다투거나 머리에 물동이나 장작더미를 인 채 오물 속을 헤치는 게 주요 일과다.





아동 발달 전문가들은 로힝야 아이들의 미래가 몹시 암울하다고 지적한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정신건강 고문인 랄루 로스트럽 홀트는 "아이들의 집단적인 정신건강 위기가 심각하게 커질 수 있는 완벽한 환경"이라고 말했다.
두 달째 난민 캠프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상당수의 로힝야 어린이가 "지속적인 '투쟁-도피 반응'(스트레스나 긴박한 상황에서 시작되는 교감신경계의 생리적 반응)의 자극 속에서 살고 있다"면서 "이는 아이들의 뇌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라고 우려했다.
유엔아동기금(UNICEF) 콕스바자르 지부 대변인 벤저민 슈타인레히너도 "최근 콩고와 같은 다른 곳에서도 가족이 살해되거나 엄마가 성폭행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아이들이 있었지만, 로힝야는 그 규모가 훨씬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아이들이 겪은 트라우마를 어떻게 감당해 낼지 알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국제기구나 구호단체들은 당장 시급한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느라 정신건강 문제까지 돌볼 여력이 없다.
더구나 난민 캠프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으로, 국경없는의사회는 지난해 8월 말부터 9월 말까지 미얀마에서 최소 730명의 로힝야 어린이가 사망했다고 밝혔다.
아이들 대부분이 총격으로 숨졌고 약 10%는 불탄 집 안에서, 약 5%는 구타로 목숨을 잃었다.


gogog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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