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캐나다 놀라게 한 대표팀 '최고의 재능'
1라인에서 3살 터울 형 김기성과 '환상호흡' 자랑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21위)은 지난해 12월 14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2017 유로하키투어 채널원컵에서 세계 최강 캐나다와 맞섰다.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로 비견된 매치업이었다. 캐나다는 최근 4번의 동계올림픽에서 3차례나 금메달을 차지했다. 반면 한국은 오는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개최국 자격으로 첫 올림픽 무대를 밟는다.
선수의 양과 질에서도 차이가 확연했다.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에 등록된 캐나다 선수는 지난해 기준으로 63만1천295명으로 전 세계 72개 회원국 중 가장 많다.
전 세계에 등록된 아이스하키 선수(176만3천62명)의 35.81%가 캐나다 국적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등록 선수는 2천675명으로 그 비중은 0.15%에 불과하다.
비록 세계 최고의 리그인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에 뛰는 선수들이 불참하긴 했지만, 인구당 56명 중의 1명이 아이스하키 선수인 캐나다와 우리나라(1만9천37명 중 1명)의 저변 차이는 비교 불가였다.
그런데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한국은 2피리어드 한때 캐나다에 2-1로 앞서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비록 경기 결과는 한국의 2-4 패배로 끝났지만, 한국 선수들은 승자처럼 박수를 받으며 링크를 떠났다.
미국 NBC 스포츠는 "한국이 캐나다를 겁먹게 했다. 올림픽 경험 한 번 없는 팀이 한때 캐나다를 앞서기도 했다"고 전했다.
당시 캐나다전에서 2골을 올린 선수가 바로 한국 대표팀의 1라인 공격수인 김상욱(30·안양 한라)이다. 대표팀에서 최고의 '하키 센스'를 자랑하는 그는 이번 채널원컵에서 캐나다, 핀란드(4위), 스웨덴(3위) 등 세계 최상위 팀을 상대로 한국이 선전을 펼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상욱은 청소년대표를 거쳐 2011년 동계아시안게임 때 성인대표팀에 데뷔했다. 세계선수권과 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대회마다 태극마크를 달았다. 세계선수권 성적은 34경기에서 7골, 25어시스트.
2011-2012시즌 아시아리그 신인왕에 오를 정도로 잠재력을 인정받았던 김상욱은 2012년 7월 안양 한라가 평창 동계올림픽을 겨냥해 전격적으로 추진한 '핀란드 프로젝트'에 선발돼 핀란드 2부리그에 임대됐다.
안양 한라 소속 간판선수 10명을 NHL, KHL과 함께 전 세계 3대 리그로 꼽히는 핀란드 SM 리가의 2부리그인 메스티스리그에 임대 보내는 프로젝트였다.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물러서는 국제 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는 판단하에 추진된, 이 파격적인 프로젝트는 비장한 각오로 시작됐지만, 돌발 변수가 튀어나오며 어긋나기 시작했다.
NHL의 파업으로 NHL에서 뛰던 핀란드 출신 선수들이 대거 귀국해 국내 유망주들이 설 자리를 잃은 것이다.
머나먼 타지에서 텃세에 시달리면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출전 시간도 보장받지 못하자 선수들은 속속 짐을 쌌다.
하지만 동료들의 귀국행에 동요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그곳에 남아서 생존 경쟁을 펼친 선수가 있었다. 바로 김상욱이다. 김상욱은 메스티스리그의 'HC 게스키 오지마'에서 11경기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고 2012년 12월 귀국길에 올랐다.
플레이오프 무대에 오른 친정팀 안양 한라를 돕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린 선택이었다. 핀란드에서 NHL 출신 선수들과 직접 몸을 부딪치며 한 단계 더 성장한 김상욱은 상무(국군체육부대)에서 전역한 뒤 만개한 기량을 마음껏 뽐냈다.
김상욱은 2016-2017시즌 아시아리그 정규리그 전 경기(48경기)에 출전, 14골 54어시스트로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귀화 선수를 제외하고 순수 한국인 선수로는 최초로 정규리그 포인트왕과 어시스트왕을 차지했다.
여기에 감독들의 투표로 결정되는 최우수선수(MVP)로 뽑혔고, 베스트 포워드에도 선정되며 정규리그 개인 타이틀 4관왕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대표팀 부동의 에이스인 김기성(33·안양 한라)의 동생이라는 그림자에서 벗어나 한국, 일본, 러시아의 연합리그인 아시아리그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선 것이다.
중·고교(경성중·고)와 대학(연세대), 상무, 실업팀까지 판박이와 같은 길을 걸어온 형제는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다. 대표팀에서도 김상욱은 한라에서 한솥밥을 먹는 형 김기성, 귀화 외국인 선수 마이크 테스트위드(하이원)와 1라인에 선다.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평창에서 역사적인 올림픽 첫 골을 터트린다면 김기성-김상욱 형제의 합작품일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한국은 12개 팀이 출전하는 평창 올림픽에서 A조에 속해 세계랭킹 1위 캐나다를 비롯해 체코(6위), 스위스(7위)와 맞붙는다. 하나같이 어려운 상대들이지만 김상욱은 핀란드에서 그랬던 것처럼 평창에서도 포기를 모른다.
김상욱은 "우리가 객관적인 전력에서 열세이긴 하지만 지려고 경기하는 것은 아니다. 백지선 감독님이 강조하는 것처럼 대표팀이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처럼 기적을 일으키는 게 가능하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는 "최선을 다해 아이스하키라는 매력적인 스포츠가 국민에게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changy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