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과정 공개에 불만…경찰 "검찰이 협조했다면 수사 마무리됐을 것" 반박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경찰이 범죄 증거물로 압수한 고래고기를 유통업자들에게 돌려주도록 한 검찰의 결정에 위법성이 있었는지를 수사하는 것과 관련, 울산지검이 처음으로 입장을 내놨다.
무대응으로 일관하던 전략을 변경, 그동안 경찰이 주도하던 '여론전'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태도로 읽힌다.
울산지검은 9일 '참고자료'라는 제목으로 기자단에 배포한 자료를 통해 이번 수사에서 검찰을 향해 겨눠진 여러 비판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검찰은 우선 "경찰이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상을 명백하게 규명하기를 기대한다. 검찰은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경찰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고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경찰 수사 초기 단계부터 사건기록 열람과 등사(베껴 옮김)를 허가하는 등 적극적으로 검찰의 사건기록을 제공했다"면서 "경찰이 신청한 구속·압수수색·계좌추적·통신 등 20건의 영장 중 15건을 청구하는 등 수사에 협조했다"고 강조했다.
청구하지 않은 5건도 보완수사 후 재지휘를 받거나 형식적 요건을 갖춘 후 다시 신청하도록 지휘한 것으로, 의도적인 영장 기각은 없었다고 부연했다.
이는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해 경찰의 영장 신청을 기각하면서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그동안 경찰 주장에 대한 반박인 셈이다.
경찰이 고래고기 환부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검사가 지난달 국외 연수를 떠난 것과 관련해서 검찰은 "해당 검사의 파견 명령은 1년 전부터 예정됐던 것"이라면서 "경찰이 정상적인 절차로 보기 어려운 방법으로 (울산지검에)서면질의서를 전달한 것도 수사에 대한 협조 차원에서 해당 검사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다만 검사가 서면질의에 응할지는 개인의 자유의사이므로 소속 검찰청이 관여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오히려 검찰은 "경찰이 3개월 넘도록 수사를 진행하면서도 담당 검사의 출국 직전에야 서면 질의서를 발송했다"면서 수사과정에 미흡함이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검찰은 자료 말미에 "수사기관은 법률에서 정하는 요건과 절차에 따라 증거를 수집해 유죄를 입증할 책임이 있고, 수사가 종결되었을 때 수사결과로 말하는 것이지 그 과정에서 확정되지 않은 내용이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면서 "그런 취지에서 검찰은 그동안 여러 의혹 제기에도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수사 중간 내용을 일일이 언론에 공개하는 울산지방경찰청의 수사 방식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으로 읽힌다.
그동안 피의자 소환 일정을 일일이 언론에 공개하거나 수시로 수사과정을 브리핑하는 등 경찰의 수사 방식을 두고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보여주기식 수사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경찰의 수사 관행을 고려하면 흉악범이나 대형 경제사범이 아닌 피의자의 소환 일정과 조사결과를 일일이 공개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래고기 유통업자의 변호를 맡아 주요 피의자로 분류된 변호사 A씨가 소환에 응했다가 지방청에 대기하던 10여 명의 취재진을 보고 놀라서 되돌아가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경찰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피의자 소환 일정 등을 공개한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이면에는 수사에 대한 여론의 지지를 얻으려는 전략도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경찰 내 대표적인 수사권 독립론자인 황운하 울산경찰청장의 주도 아래 이런 방식의 수사가 진행되고, 수사결과를 떠나 일련의 과정만으로 문제를 이슈화하고 검찰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황 청장은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경찰의 수사가 4개월가량 이어지고 있는데, 만약 검찰이 경찰을 상대로 똑같은 수사를 진행했다면 2주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영장 기각 등 검찰의 비협조로 경찰이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언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검찰이 처음으로 수사와 관련해 입장을 발표하자, 경찰도 이날 오후 그에 대한 반박 자료를 냈다.
경찰은 이 자료에서 "검찰은 고래고기 환부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변호사와 당시 피의자, 공무원들 사이에 부정한 거래가 있었는지를 수사하는데 필수적인 변호사 사무실 장부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했다"면서 "국외 연수를 떠난 검사에 대해서도 수십 차례 전화 통화를 시도했으나 자리에 없다는 핑계를 대거나 한 번도 만나주지 않는 등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의 본질은 경찰과 검찰의 수사권 갈등이 아니고, (동물보호단체로부터)고발장이 접수된 부패 의혹 사건에 대해 실체를 밝히는 것"이라면서 "수사는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증거를 수집·보전하는 과정이고, 이는 필수적인 출석 조사나 계좌·통신에 대한 압수수색 등을 통해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검찰의 입장에 조목조목 반박하는 것이 양 기관 간 갈등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우려되지만, 검찰과 법원이 적극적으로 협조했다면 이 사건은 벌써 종결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2016년 불법 고래고기 유통업자들을 적발해 고래고기 27t을 압수했으나, 검찰이 약 한 달 만에 피고인 신분인 유통업자에게 고래고기 21t을 되돌려준 과정에 위법성이 있는지를 수사하고 있다.
당시 고래고기를 되돌려 받도록 사실과 다른 의견서를 작성한 유통업자의 변호사를 소환해 조사했으며, 국외 연수를 떠난 고래고기 환부 담당 검사에 대해서는 조만간 서면 질의한다는 방침이다.
hk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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