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굴드의 물고기 책'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 맨부커상(2014년)과 영연방 작가상(2002년)을 수상한 오스트레일리아 작가 리처드 플래너건(57)의 대표작 두 편을 한국어판으로 만날 수 있게 됐다.
문학동네는 맨부커 수상작인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과 영연방 작가상 수상작인 '굴드의 물고기 책'을 동시 출간했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은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태국-미얀마 간 철도 건설 현장에서 살아남은 전쟁 포로인 외과 의사 도리고의 이야기다. '죽음의 철도'로 불린 미얀마 철도는 일본군이 인도네시아를 점령하고자 만든 길이 415㎞의 철도로, 군인과 전쟁물자 수송을 위해 건설됐다.
작가는 실제로 일본군 전쟁포로로 이 철도 건설 현장에 동원된 아버지의 기억을 되살려 이 소설을 썼다.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체험을 듣고 자란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12년간 집필에 매달리며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다섯 개의 다른 판본을 쓰고 최종판으로 이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이 작품에 맨부커상을 안긴 심사위원들은 "사랑도 잃고 전우도 잃은 전장에서 삶을 짓누르는 경험을 떠안고 살아야만 하는 자의 트라우마를 담아낸, 그야말로 최고의 소설"이라고 평했다. 심사위원장은 "몇 해간 정말 좋은 작품들이 수상했지만, 올해 수상작은 그야말로 걸작"이라고 상찬했다.
작가는 오스트레일리아 태즈메이니아주에서 나고 자라 영국 옥스퍼드 대학 우스터 칼리지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한 뱃길잡이의 삶과 가족사 이야기를 다룬 첫 소설 '어떤 강 안내인의 죽음'(1994)을 시작으로 자신의 고향과 역사에 관한 깊이 있는 작품들을 줄곧 발표해 자국은 물론 세계 문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에 함께 출간된 '굴드의 물고기 책'은 그런 작가의 역사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윌리엄 뷜로 굴드라는 화가를 중심으로 19세기 영국 식민지이자 유형지였던 오스트레일리아 태즈메이니아의 잔인한 현실과 몽환적 기억을 소설로 재구성했다.
소설의 주인공인 굴드는 실존 인물로, 태즈메이니아에 유배돼 물고기 화첩을 남겼다. 이 그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작가는 사실적이면서도 인간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굴드의 물고기 그림을 보고 상상력을 펼쳐 허구의 세계를 창조해냈다.
소설 속 굴드는 후대에 알려질 사건들의 기록을 전적으로 반박하며 실제로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밤마다 물이 머리까지 차오르는 동굴 감옥에서 사람의 피와 똥, 오징어의 먹물과 성게의 가시를 짓이겨 물고기 그림을 그리면서 이야기를 써나간다. 영국 관리의 눈을 피해 나라를 세우려고 하는 사기꾼 사령관, 죄수들의 재능과 노역을 착취해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고자 하는 의사, 유형지의 실제 모습 대신 자신의 이야기 재주에 취해 역사를 날조하는 서기, 마지막 남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침략자들을 공격하는 토착민들의 이야기다.
이 작품은 2001년 출간 당시 "독창적이고 도발적이며 수상하고도 아름다운 소설"이라는 평을 받으며 이듬해 앨리스 먼로, 이언 매큐언, 네이딘 고디머 등 쟁쟁한 작가들을 제치고 영연방 작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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