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넌 축출한 억만장자 머서, 미 정계에 부호들 입김 세져

입력 2018-01-10 16:37  

배넌 축출한 억만장자 머서, 미 정계에 부호들 입김 세져
애덜슨도 트럼프의 '예루살렘 선언'에 결정적 영향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부호들의 미국 정치에 대한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 정치에 대한 돈의 위력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최근 일부 사례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주요 정책 결정이나 정계 개편에서 부호들의 점증하는 입김을 반영하고 있다.
천생연분으로 불렸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최측근 복심이었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의 관계도 재정후원자들이 등을 돌리면서 결국 지상의 파국으로 결말이 났다.
배넌이 기득권을 타파하기 위한 포퓰리즘 운동의 발판으로 삼았던 극우 매체 브레이트바트로부터 축출된 것도 막강한 후원자였던 로버트 머서가 등을 돌린 데서 비롯됐다.
컴퓨터 과학자로 초기 인공지능 개발자인 머서는 헤지펀드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스의 공동 최고경영자(CEO)로 부를 쌓았고 보수우익 단체에 거액 기부를 통해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극우 매체 브레이트바트도 그중에 하나였으며 이를 통해 그동안 배넌의 재정후원자 역할을 해왔으나 배넌이 트럼프와 불화하면서 배넌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재정후원이 떨어지면서 배넌은 한순간에 공화당 실력자에서 사실상 무명의 영향력 없는 언론인 신세로 전락했다.
머서는 언론인 저서를 통해 문제가 된 배넌의 인터뷰 내용을 전해 듣고 충격을 받았으며 곧바로 백악관에 전화를 걸어 트럼프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다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머서는 또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선거전에도 개입, 브렉시트를 주장하는 영국 독립당 대표 나이절 패라지에 정보분석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대서양 양안의 정치에 개입해왔다.
국제적 반발을 초래한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결정'도 유대인 부호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의 전례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는 결정을 실행에 옮긴 데는 공식 정책 루트보다 부호들의 사적 채널을 통한 압박이 더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 셈이다.
유대인으로 라스베이거스의 국제적 카지노 재벌인 셸던 애덜슨은 수시로 백악관에 전화를 걸어 당선되면 예루살렘으로 대사관을 옮기겠다는 '선거공약 이행'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친이 우크라이나 유대인 가문 출신인 애덜슨은 동유럽계 유대인답게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등 이스라엘의 보수 우익을 지원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부호들의 압박에 저자세인 이유는 물론 돈 때문이다.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이들 부호로부터 많게는 수천만 달러를 지원받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애덜슨은 선거전에 2천500만 달러를 지원한 외에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준비에도 500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같은 부호인 트럼프는 선거전 당시 후원이 필요 없다고 호언장담했으나 실제로는 애덜슨에게 자금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머서의 경우 2015년 워싱턴포스트(WP)가 정계에 영향력이 큰 10대 부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지명할 만큼 각종 선거전에서 우익인사를 지원했다. 극우 인사 존 볼턴과 트럼프 대통령, 그리고 배넌 등이 사례이다.
2016년 대선에서는 공화당의 테드 크루즈 후보에게도 1천100만 달러를 지원하기도 했다.
이러한 자금 지원을 바탕으로 이들 부호는 마치 백악관을 자신의 집처럼 자유롭게 드나들며 트럼프 대통령과 점심을 같이하고 주요 정책에 대한 자문을 제공한다.
민주당도 이른바 큰손들의 영향력이 크다. 근래 트럼프 대통령 탄핵에 열을 올리고 있는 톰 스타이어(60)가 대표적 인사로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 수천만 달러를 기부하는 한편 개인적으로 트럼프 탄핵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거액을 들여 TV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자수성가형 슈퍼리치인 스타이어는 월가의 전설적인 헤지펀드 운용자에서 환경운동가로 돌변한 이례적인 케이스. 번 돈을 자신의 정치적 이념에 부합하는 정치인들에게 아낌없이 쏟아붓고 있다.
부호들의 이러한 재정적 후원은 선거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정치인들에게는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나 자칫 정치가 부호들의 대리전 역할에 그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yj378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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