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한일 위안부 합의가 1990년대 일본이 내놓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법인 '아시아여성기금'(정식명칭: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과 비슷한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9일 입장 발표와 문재인 대통령의 10일 기자회견으로 윤곽을 드러낸 우리 정부의 위안부 합의 후속 조치는 일본 정부 예산으로 출연한 10억 엔을 우리 정부 예산으로 대체해 결과적으로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 지원'이 아닌 '한국 정부 지원'을 받게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 정책이 이대로 추진되면 20여년 전 아시아여성기금의 전철을 밟는 양상이 될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1993년 군위안부 제도에 일본 군과 관헌이 관여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 고노(河野) 담화를 발표한 데 이어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 재임 때인 1995년 7월 민간 모금액을 기반으로 아시아여성기금을 만들었다. 일본 나름대로 내놓은 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었다.
이 기금으로 피해자들에게 1인당 200만 엔의 위로금과 의료복지비를 전달하고 총리의 사죄편지를 발송했지만, 한국의 피해자들과 지원단체로부터 "법적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일본 정부의 책임회피 수단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러자 우리 정부는 1998년 일본이 제공하려는 것과 같은 규모의 위로금을 피해자들에게 제공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더불어 아시아여성기금에 따른 한국 내 위안부 지원 사업을 중단할 것을 일본 측에 요구했다.
결국 아시아여성기금 사업은 한일 외교마찰 소재로 비화했고, 최소한 한국에서는 실패한 해법이었다는 평가 속에 2007년 해산했다.
2014년 2월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 보도에 따르면 아시아여성기금은 1996년부터 2002년까지 3개 국가 1개 지역에 대해 기금 지급 사업을 실시했는데, 한국에서는 2002년 당시의 생존 위안부 피해자(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207명 중 약 29%인 60명이 기금을 수령한 것으로 파악됐다.
아시아여성기금의 피해자 대상 금전지원 사업은 민간 모금액을 기반으로 했고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는 순수 일본 정부 예산으로 했다는 출연액을 조성했다는 점이 다르지만 결국 한국 정부의 예산으로 일본의 지원을 대체하려 하는 측면에서는 대동소이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 정부는 합의 파기나 재협상 요구를 하지 않기로 했지만 일본 측은 한국 정부의 예산으로 일본의 출연금을 사실상 대체하는데 대해 합의 위반임을 주장할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2015년 12·28 위안부 합의는 '한국 정부가 전(前) 위안부 분들의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이에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거출'한다는 문구를 포함함으로써 피해자 지원 예산 제공은 전적으로 일본 정부 몫으로 규정하고 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10일 "위안부 문제는 결국 응어리를 안은 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양상"이라며 "한일 정부 사이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동력이 또 한번 생길 수 있을지 장담키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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