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찰 '안성 청룡사'에 보물 문화재가 많은 까닭은

입력 2018-01-10 16:48   수정 2018-01-10 18:39

작은 사찰 '안성 청룡사'에 보물 문화재가 많은 까닭은
국립중앙박물관, 청룡사 문화재 조사 보고서 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경기도 안성 서운산 골짜기에 있는 청룡사(靑龍寺)는 전각 예닐곱 채만 있는 자그마한 절이다.
그런데 이 사찰에는 유독 중요한 문화유산이 많다.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만 해도 동종(제11-4호), 대웅전(제824호), 영산회괘불탱(제1257호), 감로탱(제1302호), 소조석가여래삼존상(제1789호) 등 5건에 달한다.
지명도가 그리 높지 않은 절에 이처럼 보물 문화재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국립중앙박물관이 2016년 7월부터 1년여간 진행한 문화재 조사 결과를 담아 10일 발행한 보고서 '조선의 원당2, 안성 청룡사'를 보면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다.
원당(願堂)은 조선시대에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고 세상을 떠난 왕과 왕비의 명복을 빌던 사찰을 뜻한다. 고려시대에 창건된 청룡사 또한 원당이었는데, 인조의 셋째 아들인 인평대군(1622∼1658)이 특히 많이 후원했다. 인평대군은 승려를 보호하고 사찰을 지켰다고 알려진 인물인데, 그의 후손들도 청룡사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청룡사의 보물 가운데 대웅전과 소조석가여래삼존상은 17세기 초반, 동종과 불화인 영산회괘불탱·괘불탱은 17세기 후반에 제작됐다. 인평대군을 비롯한 조선왕실의 여러 인물이 사찰을 지원한 덕분에 뛰어난 불교미술 작품이 만들어진 셈이다.



보고서에는 청룡사의 역사뿐만 아니라 조각, 회화, 승탑 등 문화재를 실측 조사하고 정리한 논고 7편이 실렸다. 불화의 안료와 불상 내부에 넣었던 발원문의 직물을 분석한 결과, 주요 기록의 번역문도 담겼다.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청룡사와 조선왕실의 인연은 전각의 중수 현판과 불화 등에 잘 남아 있다"며 "왕실의 후원에 더해 사찰 주변의 백성들이 했던 시주와 공양이 지금의 청룡사를 이루는 데 기여했다"고 밝혔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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