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세계 경제 패권을 놓고 격돌해온 미국과 중국이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공세 수위를 높이며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이 중국 기업의 미국 상륙에 훼방을 놓는 방식으로 허를 찌르자 돌연 중국에서는 미 국채 매입을 중단하겠다는 설이 흘러나오면서 잘 나가던 미 금융 시장에 연초부터 찬물을 끼얹었다.
11일 로이터 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중국 당국자들이 미 국채 매입을 중단하거나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10일(이하 현지시간) 나오면서 미 금융 시장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채권 시장부터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은 미 국채를 1조1천900억 달러 규모로 거머쥔 최대 보유국으로, 시장에서는 큰손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소문에 매도세가 퍼지면서 미 10년물 국채 금리가 장중 한때 2.597%까지 급등했다. 이는 10개월 만에 최고치다. 채권 금리는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미 재무부는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데이비드 말파스 재무부 대외경제 차관은 기자들과 만나 중국의 미 국채 수요에는 어떠한 우려도 없다며 소문을 부인했고, 10년물 금리는 진정세를 나타냈다.
그러나 경기에 더 민감한 2년물 금리는 충격이 컸다. 장중 1.985%까지 치솟아 2008년 9월 이후 9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고 CNBC는 전했다.
고공행진하던 뉴욕 증시에도 중국발 악재가 퍼지기 시작했다. 전날까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던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가 10일 0.07% 하락 마감했다.
중국의 국채 매입 중단설은 새해 들어 미국이 중국 기업의 미 상륙에 잇따라 빗장을 거는 가운데 갑작스럽게 불거진 것이다.
앞서 중국 알리바바 자회사인 디지털 결제업체 앤트파이낸셜이 미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 제동에 걸려 미 송금회사 머니그램 인수가 무산됐으며, 지난 8일엔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 화웨이가 미 통신사 AT&T의 손을 잡고 미국에 진출하려던 계획이 백지화됐다.
여기엔 중국의 첨단 기술 스파이 행위를 의심하는 미국 정부의 개입이 있었다는 게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분석이다.
이러한 흐름으로 볼 때 중국은 미국에 반격하고자 국채 매입 중단이라는 카드를 꺼냈을 수 있다.
지난해 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밀어붙인 대규모 감세로 향후 10년간 연방 재정 적자가 1조 달러가량 늘어날 것으로 추산되는 상황에서 미 정책 당국 입장에서는 큰손 중국마저 사라진다면 이중 부담이 될 수 있다.
투자은행 제프리즈의 선임 이코노미스트인 토머스 시먼스는 "중국이 만약 손에 쥐고 있는 미 국채를 들고 흔든다면 미국 입장에서는 대규모 적자 재정을 꾸리는 게 힘든 일이 될 것"이라고 블룸버그 통신에 말했다.
여기에다 불과 이틀 전인 지난 8일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장기 국채 매입 규모를 200억 달러 정도 줄이겠다고 깜짝 발표했던 점도 중국이 '채권 압박' 카드를 꺼낸 시점과 교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는 일본발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중국도 채권 시장에서 발을 빼려한다는 분석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금융 위기 이후 주요국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책으로 시중에서 채권을 사들여 돈을 푸는 양적완화를 고수하면서 글로벌 채권 시장에서 매수세로 작용했으나, 지난해부터 미국, 유럽 등을 필두로 속속 긴축 기조로 돌아서면서 투자자 사이에선 돈풀기 시대가 끝났다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꺼내 든 '채권 압박' 카드가 실제로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지에 대해선 엇갈린 의견이 나오고 있다.
중국이 미 국채를 도마 위에 올려 '갑질'을 시도하는 게 드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양국 간 무역 갈등이 고조되던 지난해 8월에도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무역법 301조에 근거한 지식재산권 조사라는 초강경 카드를 꺼내자 중국 관영매체들은 일제히 "중국이 보유 달러 자산을 매각하면 미국의 금융 안정성이 크게 충격을 받을 것"이라며 보복 가능성을 경고했다.
특히 이달 말까지 미국이 중국산 태양광 패널, 세탁기 등에 대한 관세 부과를 결정할 예정이라는 점에서 미국이 꺼내 들 수 있는 카드가 아직 많이 남아있는 셈이다. 미국은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한 조사도 진행 중이다.
일부 이코노미스트들은 중국이 달러화 자산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미 국채 보유를 더 공격적으로 줄일 수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폴 애시워스는 "(중국으로서는) 달러화 자산을 둘 장소가 그렇게 많지 않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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