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시의회 결정…러 정치인들 "비열한 책략" 비난
(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 미국 워싱턴 D.C.가 주미 러시아 대사관 거리 이름을 피살된 러시아 야권 정치인의 이름으로 바꿨다고 10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이 보도했다.
시 의회는 러시아 대사관 건물 앞 거리명을 고인이 된 보리스 넴초프로 변경하는 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고 밝혔다.
시 의회는 성명을 통해 "살해된 민주주의 운동가를 기리기 위한 결정"이라면서, 해당 도로는 러시아 대사관 앞 위스콘신 대로 일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넴초프는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절 제1부총리를 지냈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맞섰던 유력 야권 지도자다.
그는 2015년 2월 27일 크렘린 궁에서 불과 200m 정도 떨어진 모스크바 강 다리 위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넴초프를 살해한 범인들은 모두 11∼2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넴초프의 유족들과 지지자들이 살해를 지시한 배후라고 지목한 친(親)크렘린계 인사이자 푸틴 대통령에 충성하는 체첸자치공화국 수장 람잔 카디로프에 대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워싱턴 D.C.의 결정에 러시아 정치인들은 "비열한 책략"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민족주의 성향의 자유민주당(LDPR) 수장인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는 "미 당국은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비열한 계략을 쓰고 싶은 게 분명하다"고 비판했다.
공산당의 드미트리 노비코프는 "미 당국은 오랜 기간 러시아 내정에 개입하는 자신들만의 게임에 몰두해 왔다"고 말했다.
러시아에도 넴초프가 살해된 장소 주변에 그를 기리는 공간이 있기는 하지만 추모 물품 등이 훼손되거나 늦은 밤거리 청소부들이 치워버리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넴초프의 딸 잔나는 "현 러시아 정권은 그런 상징이 중요하며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기념물을 제거하기를 원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버지는 열린 마음을 지닌 러시아의 애국자였으며 추모받을 자격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잔나는 "러시아 당국의 반발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기념을) 할 수가 없지만 이곳에서는 가능하다"면서 "없애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잔나는 지난달 초 워싱턴 D.C.를 방문해 거리 이름 변경 사업에 힘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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